대선주자 '전속고발권 폐지' 찬성 맞서 경제검찰 위상 확보
【세종=뉴시스】박상영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달라졌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검토에 이어 집단소송제와 사인의 금지청구권제 등 경제개혁 이슈를 연이어 꺼내 들고 있다.
대기업 제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공정위가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 깃발을 다시 치켜세우는 형국이다.
3일 공정위에 따르면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36회 기념식에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일부가 가해기업을 상대로 소송해서 승소할 경우,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증권 분야에 한해 제한적으로 도입했다.
공정위가 집단소송제와 함께 도입을 검토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불법행위를 통해 얻은 이익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토록 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올해 초 고의로 소비자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혔을 때는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도록 제조물 책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
현재는 제조물 책임법과 함께 하도급법, 대리점법 등 특수한 거래관계를 규정한 법에만 특정 배수만큼 배상하도록 제한적으로 규정했다.
대기업들의 불법행위로 전체 피해액은 크지만 개별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배상액이 적다는 점 때문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제조물 책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할 때에도 공정위의 검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집단소송제는 도입하지 않았다.
앞서 공정위는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검토했었다. 담합 등과 같이 소비자 피해를 일으키는 행위에 대해 이들 제도를 도입해 법 위반 억제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여야도 총선 공약으로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대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약속했다.
그러나 피해자 집단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소송이 남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집단소송제 도입에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공정위도 소송 남발과 자진신고감면(리니언시)감소를 우려해 도입에 미적지근했다.
공정위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카드를 꺼낸 것은 최근 유력 대선주자들의 선거 공약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 당 대표는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집단 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근 공정위는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일가 지분율 30% 이상 상장사'에서 '20% 이상 상장사'로 확대하는 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지 2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 검증이 안된 상태라며 난색을 표했던 그동안의 입장에서 바뀐 것이다.
이같은 공정위의 입장 변화를 두고 전속 고발권 폐지 주장에 맞서 경제 검찰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하도급법이나 대리점법과 달리 공정거래법은 모든 기업 활동 전반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며 "새로 출범하는 정권에 코드를 맞추기 보다는 제도 도입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득과 실을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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