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탄핵 되자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 일각에서도 그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아가 '자연인'이 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서초동 검찰청사에 불려가는 모습을 보이면 동정 여론이 보수후보 지지로 흐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진보진영이 가장 우려했던 대목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삼성동 사저에 도착한 후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며 사실상 헌재 판결 불복에 불복하면서 이같은 당초 예측이 현실화하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일단 보수층에서조차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하는 태도를 보인 박 전 대통령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좌우에서 선택의 고민을 하는 중도진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보니 박 전 대통령의 불복 행동이 자연스레 구 야권인 진보정당 후보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결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향후에도 여론전을 통해 지지층 결집을 유도하면서 향후 검찰 수사와 대선 정국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길을 걷을 것으로 보인다. 친박 핵심 의원들도 박 전 대통령에게 힘을 보탤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탄핵 찬성에 대한 국민여론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과 친박핵심들의 행태가 다수의 국민 기대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기간이 60일도 남지 않은 초단기 레이스다. 보수진영이 중도로 외연확장을 거듭해도 부족한 판에 박 전 대통령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으로 나뉠 경우 진보진영은 손쉽게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번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민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을 헌법과 국민을 부정한 책임을 몇갑절로 지게 될 것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수사도 촉구했다.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하며 '정권심판론'을 유지시켜 가는 모양새다. 국민의당은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민주당을 향해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고 촉구해 온도차를 보였다.
김종배 정치평론가는 "박 전 대통령의 어제 발언은 동정론을 일으킬 여지를 모두 없앴다"며 지지세력이 동조하겠지만 박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계층의 동정을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정서가 계속 유지되면서 옛 야당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국면이 조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전날 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 중도 및 보수층에도 실망한 이들이 상당수"라면서 "결과적으로 지지율 1위를 유지하는 문재인 전 대표에게 점점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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