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류 작가 샬럿 브론테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19세기 영국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당하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 '제인 에어'가 주인공이다.
영국 국립극장과 브리스틀 올드 빅이 2014년 공동 제작한 작품인데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출로 러닝타임 3시간20분이 마법처럼 흘러간다.
연극 '피터팬' '보물섬' 등 고전소설의 해석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연출가 샐리 쿡슨은 미니멀리즘한 무대로 화려한 영화 이상의 감각적인 미장센을 뽐낸다.
가건물처럼 보이는 2층짜리 간결한 나무 세트와 사다리 등만을 이용한 무대는 제인 에어가 악몽 같은 시절을 보낸 외숙모 집, 그녀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선 학교, 그리고 가정교사로 일하며 만나게 된 사랑하는 남자 '로체스터'가 주인인 손필드의 대저택으로 시시각각 탈바꿈한다.
액자 모양의 나무 틀 몇 개와 바람에 날리는 큼직한 천만으로, 문을 열고 바람을 느끼는 제인 에어의 해방감을 표현하는 등 단출한 소품과 어스름한 조명,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소설 속 장면과 감정을 무대 위에서 그 이상으로 재현한다.
그 가운데에서 여러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 제인 에어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다양한 목소리, 과거의 아픈 기억과 상처가 불쑥 떠오를 때 무대를 함께 지배하는 붉은 기운은 미스터리적인 면모를 띠며 '고전의 세련된 해석은 이런 것'이라는 걸 증명하다.
제인 에어가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을 무대 위 라이브 밴드의 드럼과 베이스 등의 리듬으로 속도감 있게 표현한 것과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 세월이 흘러갔음을 증명하는 연출은 '고전은 지루하다'는 편견도 무색케 한다.
영화 '미스터 홈즈' '패딩턴'에서 활약한 매들린 워럴의 제인 에어는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갓난아기의 힘찬 울음부터 시작해 가난하고 예쁘지 않고 키도 작지만, 누구보다 큰 여성으로 자리매김하는 제인 에어에게 단호하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페미니즘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인데, 명분과 설명 없이도 이 문제에 대해 뜨겁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까지 마련해준다.
내셔널 시어터 라이브(National Theatre Live)의 약칭인 NT 라이브는 영국 국립극장이 연극계 화제작을 촬영해 세계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생중계 또는 앙코르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립극장을 통해서 이런 수작을 영상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건 다행이다.
2014년 3월 국립극장이 국내 최초로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2년 동안 '워 호스' '코리올라누스' '리어왕' '프랑켄슈타인'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햄릿'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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