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약속과 관련한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대중국 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중국이 환율을 조작한다며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그는 37년 동안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는가 하면서 무역과 환율갈등,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 전 방위적으로 중국과의 충돌을 빚어왔다.
트럼프는 2015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 오피니언 페이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트럼프 정권의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대선 과정 '미국 유권자와의 계약서(Contract with the American Voter)'에서도 "미국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라고 재차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일 취임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면서도 중국을 따로 지목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트럼프 취임 후 개편된 백악관 홈페이지에도 중국의 환율조작 의혹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 역시 23일 첫 공식 브리핑에서 남중국해와 미·중 무역과 관련해 "쌍방향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강경노선을 시사했을 뿐 중국의 환율조작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공식서명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의 최대 수혜국이 중국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발을 빼면서 중국에게 지역 경제주도권을 넘겨줬다는 풀이다.
23일(현지시간) CNN머니는 전 세계 외교관들과 사업자들이 트럼프 취임과 동시에 G2(미국과 중국) 갈등에 불이 붙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초조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의 이선 해리스 글로벌이코노미스트는 "(새 정부 출범) 직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논란을 초래한다면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밝혔다.그는 "트럼프 정권이 중국과 협상을 시작할 때 극적인 제스처를 보이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는 '일시 정지(pause)' 상태일 뿐, 중단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안심하기 이르다고 전했다.
경제·정치 전문가들은 더 이상 '환율조작국'이라는 꼬리표가 중국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 와서 중국을 환율조작국 지정한다면 뒷북치는 꼴로 논란만 일으키게 될 것으로 보고있다.
지난 9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2015년과 2016년 총 8000억 달러(약 931조6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외화보유고에서 빼냈다. 중국이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 대미 수출에서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주장이 시기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중국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J. 스테이플튼 로이는 "현재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비난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대중국 정책을 주장해온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마음이 180도 바뀌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CNN머니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관련해 복잡하고 포괄적인 무역·보안 이슈를 하나로 묶어 제시하기 위해 '중국 때리기'를 일시적으로 보류하고 있을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고 전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내정자가 상원 인준을 거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경제정책과 관련된 결정을 섣부르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취임하기 전 지난 13일 WSJ과의 인터뷰를 통해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중국과 대화를 할 것"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포함한 모든 것이 협상 중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당시 발표한 '미국 유권자와의 계약서'에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도록 재무장관에게 지시하겠다"라고 명시돼 있다.
한편 므누신 재무장관 내정자는 23일 상원 재정위원회에 보낸 서면답변서를 통해 "인준된다면 중국의 환율조작 여부를 살펴볼 작정"이라며 구체적인 즉답을 피했다.
badcomm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