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첫 내한 리처드 도킨스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거죠"

기사등록 2017/01/21 22:14:03
【서울=뉴시스】리처드 도킨스, 영국 행동생물학자 겸 진화론자(사진=인터파크도서)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진화는 상세하게 예측할 수 없어요.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겁니다."

 첫 내한한 영국의 세계적인 행동생물학자 겸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76)가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에서 한국 독자와 처음 만났다.

 도킨스는 인터파크도서와 카오스(KAOS)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한 이날 특별 강연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독자 300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현재 옥스퍼드대학 뉴칼리지의 교수로 '대중의 과학 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석좌교수' 직을 맡고 있다. 1976년 발표한 '이기적 유전자'에서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이고 그 특징이 '이기적'"이라고 선언해 세계적으로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이날 주제에 대한 강연 요청을 기존에도 많이 받지만, 종의 진화를 세밀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진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재현실험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우연의 가능성으로 비슷한 형식의 진화가 발생할 수 있지만, 어떤 형질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건 드물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정한 반복 패턴이 있을 때, 진화를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진화는 두 종으로 나누면서 나타나는데, 이미 다양한 영향이 주고 받는 지구에서는 힘들다며 폐쇄적인 목성에서 진화가 이뤄질 경우 중력이 강해 다리가 굵은 코뿔소 모습의 쥐가 나타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서울=뉴시스】리처드 도킨스, 영국 행동생물학자 겸 진화론자(사진=인터파크도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 '확장된 표현형' 등의 저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저술가로 부상했다. 대중적인 글쓰기까지 겸비해 지식인, 대중을 가리지 않고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학자로 꼽히기도 하다.

 특히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위해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니렌버그 상(2009) 등 수많은 상과 명예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생 등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이날 강연에서 전문적인 지식보다 대중적인 관심에 초점을 맞췄다.  

 생물학적 진화보다 문화적인 진화가 더 빠르다고 짚은 부분이 예다. 그는 "자동차, 비행기, 도구, 집 등의 변화가 빨라요. 인류의 변화는 유전자적인 변화보다 문화적인 변화에 더 영향을 받고 있죠"라고 봤다.

 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현재 인간의 뇌로 진화해오기까지 기간인 300만년은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했다. "인간의 뇌가 계속 커지지는 않겠지만, 만약 계속 커진다면 (20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인간의 기술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는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도 봤다. "특히 인공지능(AI)에 대한 두려움이 있죠. 인간의 기능이 AI로 대체되고 우리가 창조한 것을 로봇들이 대신할까 걱정이에요. 인간은 로봇 마스터에 한정되겠죠. 자기 파괴의 씨앗을 뿌리는 겁니다. 로봇들이 이 강연장에서 실리콘과 탄소 기반 시대에 대해 논할 수가 있는 거죠."

 도킨스는 진화를 예측할 수 없고,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 거라는 이 같은 위기감 속에서도 세상과 미래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서울=뉴시스】리처드 도킨스, 영국 행동생물학자 겸 진화론자(사진=인터파크도서)
 "마틴 루터 킹은 역사의 바퀴는 긍정적으로 굴러갔다고 했고, 스티븐 핑거 역시 인류는 일반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했죠.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등이 예죠. 저도 동의해요. 현재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수 있지만 인간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과 우주는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거든요."

 강연 내내 트럼트 당선과 관련 영국식 유머를 몇 차례 던진 도킨스는 석학이라는 무게감을 덜고 독자들과 만났다. 이날 매고 온 사슴 문양이 새겨진 넥타이는 자신이 사인을 해준 이탈리아 청년이 선물해준 거라며 활짝 웃기도 했다.  

 50분가량의 강연 뒤에 진행한 질의응답에서 그의 유머감각이 더 발휘됐다. 언어의 다양성과 관련한 질문에서 현재 가장 영향력이 큰 영어는 '게으른 언어'라며 "영국 방송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내보낼 때 영어로 더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에게 사회학적, 역사학적 질문이 쏟아지자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의사 결정을 해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강연회 이후에는 사인회 줄이 길게 늘어섰다. 도킨스는 이후에도 한국 독자를 계속 만난다. 강연문화기업 마이크임팩트가 22일 세종대 대양홀에서 여는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ㅣ빅 퀘스천 2017'에서 강연한다.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을 펴낸 김영사 주최로 25일 고려대에서는 진화심리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 대담 '나의 과학 인생'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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