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점 중 잘못된 그림 없다는 이 화백 진술 받아들이기 어렵다"
"캔버스 고정할 때 접착제 사용, 대단히 이례적인 일"
"현씨 일당이 구입한 석채 성분, 현미경으로 관찰돼"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이우환(81) 화백의 작품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화랑 운영자와 골동품 판매상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화가 본인이 "모두 내가 그린 진품"이라고 강력 주장한 것을 법원이 배척하고 대신 수사기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동아)는 18일 사서명위조 등 혐의로 기소된 위작(僞作) 총책 현모(67)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위조사서명행사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골동품 판매상 이모(68)씨에게는 징역 7년, 사서명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화가 이모(40)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작품은 법이 개입하기에 앞서 미술시장의 자율적인 시스템과 역량으로 걸러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면서 현씨 일당은 전문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나름의 조직을 갖춰 사기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국내 미술시장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했고, 작가의 명예와 미술계의 신뢰성에도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피해자들이 입은 문화적·경제적 피해가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범행 규모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많은 관련 종사자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재판부는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과 달리 현씨과 이씨가 총 8개의 서명을 위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서명위조죄의 법정형은 높지 않은데, 사기죄의 법정형이 높다. 이들이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개인이 저지른 사기 범죄보다 높은 형을 선고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한국미술감평원, 국제미술과학연구소 등이 위작이라는 일치된 결론을 내린 점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작 논란'에 싸인 작품 감정을 위해 이 화백이 지난해 6월 두 차례 그림을 직접 확인했다"며 "이 화백은 1차 감정에서 일부 의문을 가졌으나, 2차 감정에서는 '시중에는 위작품들이 충분히 돌아다니고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위 13점 중에는 잘못된 그림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의 감정 문답과 감정 경위 등을 볼 때 '위 13점 중에는 잘못된 그림이 없다'는 이 화백의 진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현씨와 이씨가 과연 그림을 제작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문제"라면서 "문제된 그림 4점에는 캔버스 천을 캔버스 틀에 고정시키기 위해 본드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 이로 인해 접착제 성분이 검출됐는데, 법정에 출석한 미술업계 종사자 6명 모두 '캔버스를 고정할 때 못이나 타카로 고정하는 것을 넘어 접착제를 사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그림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리는 요소'라고 진술했다. 이 화백도 캔버스에 접착제를 바르는 일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국과수 등 복수 전문가의 감정의견을 종합해보면, 캔버스 측면 테두리를 흰색으로 다시 칠해 바탕칠한 노란색이 침범하지 않도록 한 것은 이 사건 그림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면서 "현미경으로 볼 때 현씨 일당이 구입한 석채 성분과 크기가 비슷한 '입자상 물질'이 관찰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골동품상 이씨는 범죄 수익의 대부분을 취득한 뒤 두 화가와 달리 범행을 계속 부인했다"며 "증거에 관해 합리적인 답변을 하고 있지도 않고, 반성하고 있지도 않다"고 양형 이유를 말했다.
이어 "현씨는 범행 가담 정도가 가볍다고 할 수 없지만, 범행을 자백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며 "화가 이씨의 경우 한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으나 범행으로 얻은 이득이 크지 않다.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을 부양해야 하는, 경제적으로 매우 곤궁한 처지에서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현씨는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 이씨와 함께 지난 2012년 2월부터 그해 10월까지 고양시 일산 동구 소재 한 오피스텔에서 이 화백의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 작품 3점을 모사하고 캔버스 뒷면에 이 화백의 서명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사 결과 현씨는 골동품 판매상 이씨로부터 "이 화백의 위작을 만들어주면 이를 유통시켜 수익금의 50%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현씨와 화가 이씨가 위작한 그림 3점을 13억2500만원 상당에 판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현씨에게 징역 5년, 화가 이씨에게 징역 5년, 골동품상 이씨에게 징역 12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 화백은 1936년 경남 함안 출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획기적 미술운동인 모노파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하며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1973년부터 1991년까지 도쿄 타마미술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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