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백 변호사 "선고 결과 깜짝 놀라…이 화백 아직 몰라"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13점은 틀림없는 내 작품"이라고 주장했던 이우환 화백과 달리 법원은 최종 4점을 위작으로 판결하고 위작범들에 실형을 선고했다.
18일 사서명위조 등 혐의로 기소된 화랑운영자 현모씨(67)에게 징역 4년, 골동품 판매상 이모씨(68)는 징역 7년, 화가 이모씨(40)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동아)에 따르면 화랑운영자와 골동품 판매상은 알고 지내던 서양화가 이모씨를 이용했다. 4점을 베껴 그린 뒤 가짜 서명을 적게 했다. 위조품을 팔아 수익금을 절반을 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갔다. 이들은 위작한 그림 3점을 13억2500만원 상당에 판 것으로 나타났다.
위작은 이우환 화백의 대표작이자 가장 비싼 작품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 4점이다.
하지만 이같은 판결에도 미술시장은 석연치 않은 분위기다.
지난해 6월 이우환 화백이 경찰의 위작 판정을 정면으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이우환 화백은 당시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점 모두 본인의 작품이 틀림없다고 해 파문이 일었다.
위작범이 잡힌 상황에서 경찰서에 출두, 직접 감정을 한 이 화백은 "13점은 틀림없는 내 그림"이라고 했다.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 색채로 그린 작품이라며 "작품을 위조했다는 사람이 그린 그림이 과연 13개 작품 중에 확실하게 포함돼 있는지 믿을 수 없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우연일까. 이 화백의 주장처럼 이번 법원 판결은 13점중 '4점을 위작'으로 파악했다.
◇위작 근거 ① "4점에서 접착제 성분 검출"
법원판결에 따르면 "이번 사건 그림 4점에는 캔버스 천을 캔버스 틀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본드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 4점이 위작이라는 근거다.
‘캔버스를 고정할 때 못이나 타카로 고정하는 것을 넘어 접착제를 사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서, 그림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리는 요소’라는 법정에 출석한 미술업계 종사자(6명)들의 의견이 일치했고, 이우환 화백도 '캔버스에 접착제를 바르는 일은 없다'고 한 진술이 근거"라고 밝혔다.
"캔버스를 물리적으로 고정하는 것을 넘어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접착제를 사용하게 되면, 캔버스 천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고 설명했다.
법원은 피고인 현○조는 ‘그림이 완성된 뒤에 캔버스 천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기 싫어서, 보기 좋게 붙이기 위하여 본드를 바른 것’이라고 진술했고, 피고인 이○완 역시 ‘현○ 조가 나무틀과 캔버스 사이의 뜨는 부분을 접착제로 붙였다’고 진술한 사실이 있다. 캔버스 틀 고정에 사용된 접착제는, 서양화를 거의 취급하지 아니한 피고인 현○조가, 별 생각 없이, 일종의 ‘강박’ 때문에 사용한 것으로서, 피고인들 (위작)그림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 이라고 인정했다.
반면, '나머지 위작품이나 진품 기준작 중에서는 그와 같이 캔버스 천과 틀 사이에서 접착제 성분이 검출된 그림이 없다'고 밝혔다.
위작으로 본 근거는 또 있다. 캔버스 측면 테두리를 흰색으로 다시 칠하여 바탕칠 한 노란색이 침범하지 않도록 한 것 역시 위작 그림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봤다.
피고인 현○조 가 ‘(옆에 노란 물감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기 싫어서’ 칠한 것이다. 피고인 이○완도 ‘현○ 조가 캔버스 테두리에 흰색 칠을 하였다’고 진술한 사실이 있다.
법원은 "서양화를 자주 접하는 사 람이라면 굳이 신경쓰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캔버스 측면에까지 한 번 더 칠을 하는 수고를 들인 것은, 이전에 두루마리, 족자, 병풍 등 형태를 띤 민화나 동양화를 주로 취급한 피고인 현○조가, ‘캔버스’를 ‘평면의 창’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 아니하여, 캔버스를 여전히 ‘입체적 물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적시했다.
◇위작 근거 ③ '타카로 고정않고 작은 못 박아'
또한 틀을 감싸고도 남는 캔버스 천을 마음 편히 뒤로 둘러 포개어 접고 타카로 고정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틀에 꼭 맞추어 재단한 점(2차원인 캔버스 천을 3차원인 나무틀에 꼭 맞추어 씌우려다 보니, 오히려 지저분하게 뜨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고, 피고인 현○ 조가 그러했던 것처럼, ‘접착제를 발라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타카를 전혀 쓰지 않고 캔버스 측면에 수제로 제작된 작은 못을 박은 점(그 위로 흰색 칠이 되어 있다)등이 위작의 특징으로 분석됐다.
◇위작 근거 ④ '인위적인 노후화 작업'
인위적인 고색처리(노후화 작업) 흔적도 발견했다. 이우환 화백은 ‘캔버스 뒷면이나 나무틀에 물감을 칠하는 일은 없다’고 진술했다.
이 밖에 "이 사건 그림들의 물감, 밑칠, 바탕칠의 무기성분 분포가 유사한 점, 현미경으로 볼 때 피고인들이 구입한 석채 성분과 크기가 비슷한 ‘입자상 물질’이 관찰되는 점 등, 유사한 재료들을 사용하여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같은 분석은 한국미술품감평원이 2012년 6월 감정 당시에도 기준작 20~30여 점과 비교를 통하여 지적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미술품 진위 감정’은, 안목에 의한 판단, 재료, 기법, 서명 등 대조, 수정, 복원 상태 확인, 작가나 유족의 증언, 과학적 방법에 의한 분석검증, 작품 출처(소장경위, 거래경 로)에 관한 자료,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 전시, 경매 도록 등을 종합하여 판정한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위작 범행이 입증되는지를 판단하여야 하는 이 사건에서, 일반적 미술품 진위 감정과 위작 관계자들의 ‘금융거래내역’을 통해 거래 경로를 역추적했다. 또 두 차례 감정과정에서 작가가 보였던 일부 의문점들은 이 사건 그림 진위 가리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법원은 "감정 영상 통해 확인되는 감정경위, 감정 당시 문답 양상 비추어, 작가 진술 중 위작 가능성 시사하는 발언들이 있었고, '적어도 13점 중에는 잘못된 그림 없다'는 진술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 끝내도 끝나지 않는 '위작 논란'
4년여간 미술시장을 혼란케 했던 '이우환 위작 사건'은 25년째 미스테리인 '천경자 미인도 위작 사건'과 비교된다.
천경자 미인도 논란은 검찰의 '진품' 결론에도 끝나지 않고 있다. 프랑스 감정단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유족측도 항고할 방침이다.
진품과 위작은 '천당과 지옥'이다. 1억을 주고 믿고 산 그림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된다. '위작'은 결국 형사사건이 된다.
1년여간 작가와 경찰의 공방끝에 내려진 이번 법원의 판결문이 이채롭다.
"스무 살 이우환이 1956년 편찮으신 삼촌께 드리기 위하여 일본으로 가지고 간 약봉지가 그의 평생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약(藥)은 언제나 동시에 독(毒)이고(pharmakon), 그것은 관계가 규정한다. 이 판결로 인하여, 굴곡진 길을 험난하게 돌아가야만 하게 된 것처럼 생각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시장이 충격을 딛고 투명성·신뢰성을 회복하여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환부를 도려낼 필요가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부족한 우리들이, 열린 장에서 ‘대화’하고 ‘조응’하면서, 또 ‘웅성둥성’ 함께 떨리면서, 투명한 생명력을, 결국은 빠르게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 여백에서, 작가의 정수(精髓) 또한 더 새롭고 경이로운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13점은 틀림없는 내 작품"이라고 한 이우환 화백은 어떤 심정일까.
이화백 대리변호사인 서명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선고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아직 이 화백에 연락을 못했다"고 했다. 법원이 4점을 위작으로 판단한 것과 관련, "애초에 4점을 위작으로 기소된 것으로 재판부는 위작을 확신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화백은 일본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우환 화백 작품을 경매하는 미술품 경매사 한 관계자는 "미스터리 '천경자 사건'처럼 될 것 같다. 이우환 위작 사건도 공중에 뜬 것 같다"며 "이번 판결로 이 화백이 자괴감에 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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