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한 달만에 한국 외교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중국은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보복을 노골화하고,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과 총영사관 앞 소녀상 문제를 공론화했다.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대미(對美) 외교도 순탄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신 행정부 출범을 불과 열흘 가량 남겨두고 있으나, 한국의 대미 외교도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8일 방미 출국길에서 "(트럼프 측) 누구를 만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겉돌고 있는 한국의 대미 외교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長嶺安政)는 9일 일시 귀국에 앞서 한국 취재진에게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는 매우 유감"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편한 심기가 여과 없이 반영된 표현이다.
일본 정부는 부산 총영사관 앞에 또다시 소녀상이 설치되자 즉각 공세적 대응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일 주한 대사와 총영사 '일시 귀국' 조치, 한일 통화스와프협정 협의 중단, 한일 고위급 경제 협의도 연기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NHK에 출연해 10억엔(약 103억)을 냈으니 한국이 성의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부산과 서울의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그는 민간의 소녀상 설치가 양국 정부 간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라며 '국가적 신용 문제'까지 제기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사드 배치 결정을 둘러싼 중국의 보복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 방송 출연이 취소되는 사례를 시작으로 롯데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전세기 한국 운항 불허, 한국산 배터리 보조금 지급 제외 등 사드 보복 조치로 볼 수밖에 없는 사례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여기에다가 중국 국방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양국 정부 간 군사교류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정부의 움직임은 거북이 걸음이다. 청와대가 올스톱 상태라고는 하지만 어떤 의제 하나라도 의지를 갖고 해결해 보려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국정운영 콘트롤타워의 부재다.
이와 관련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급조된 외교 정책에다가 정부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서 '만약'의 사태를 충분하게 대비하지 않았다"며 "사드 발표 날 외교장관이 바지를 고치러 간 것만 봐도 정부 내에서 심도 있게 논의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중국은 한국에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면서 흔들기를 계속할 것"이라며 "일본도 당연히 한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프레임으로 강하게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아베 총리는 국내적으로 우익 세력의 비판을 받았던 만큼 자신의 국내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공세를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여기에다가 일본 아베 총리가 트럼프와의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어, 향후 소녀상 문제에 관한 국제적 여론전을 펼칠 경우 한국이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밀릴 거라는 우려도 크다.
대미(對美) 외교도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권한대행 체제로는 사실상 정상외교가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정부 간 FTA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이 공론화될 경우 정부는 대중(對中)·대일(對日)외교뿐만 아니라 대미(對美)외교에서도 고비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최 부원장은 "우리 정부가 직면한 문제는 '시한부' 정부라는 점"이라며 "상황이 계속 꼬여가지만, 주변국들에 '정권 바뀌면 바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국면"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 간 합의를 파기할 경우 외교적 타격은 클 수밖에 없지만, 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정부인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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