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바꾼다]⑤재계 '정경유착 고리' 끊고 선진경영 확립해야

기사등록 2017/01/06 06:00:00 최종수정 2017/01/16 10:10:01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출석한 재벌 총수들이 질의를 듣고 있다. 2016.12.06.  pak7130@newsis.com
대물림되는 악습을 끊어내 국민 신뢰 얻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위해선 전경련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울=뉴시스】산업부 =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정경유착 근절에 대한 목소리가 재계 안팎에서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비선실세로 드러난 최씨의 국정 농단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불러왔고 이로 인해 주요 기업 경영 일정이 사실상 올스톱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인 것이다.

 기업 스스로가 제발등을 찍은 격이 된 최근 일련의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뼈를 깍는 심정으로 정경유착 악습을 끊어야 한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필요에 따라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해체도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기업들 스스로가 투명경영·윤리경영에 나서야

 6일 재계에 따르면 정경유착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기업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요 기업 총수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일부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올 해 신년사를 통해 대대적인 쇄신을 이미 예고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과거의 성공 방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고,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치른 값비싼 경험을 교훈삼아 올해 완벽한 쇄신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투명경영을 통해 변화를 이뤄내겠다"고 언급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혁신과 패기로 내실있는 변화를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말한 변화의 핵심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쇄신하겠다는 각오가 담겼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대물림되는 악습을 끊어내 보다 투명하고 국민 신뢰를 얻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정경유착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해선 말로만 각오를 다질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제도적 감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최씨의 강요로 돈을 헌납해 온 대기업들은 어찌보면 이 사태의 피해자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공범으로 볼 수 있는 만큼 그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한 관계자는 "매년 연초가 되면 의례적으로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부정부패 유혹을 뿌리칠려면 내부 활동을 성역없이 감시할 수 있는 장치 등 선진 경영 기법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만 변할게 아니라 정부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기업이 권력의 요청을 거부할 경우 검찰 압수수색이나 세무조사 등 전방위적 보복을 쏟아내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정경유착은 지속될 수 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각종 인허가 등의 규제와 검찰수사, 세무조사 등을 명목으로 기업들을 옥죄왔던 게 사실상 그간의 '통치 수법' 아니었냐"며 "정부가 변하지 않는 한 대기업 총수는 게이트가 불거질 때마다 청문회에 끌려나가는 상황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경제민주화네트워크,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 주최로 열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모금과 설립관련 전경련 및 재벌 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남근 민변 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16.11.14.  20hwan@newsis.com
◇"자정능력 잃은 전경련은 해체해야"

 정경유착 악순환을 근절하기 위해선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전경련을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최근엔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이미 전경련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부회장은 올 해 2월 정기 총회에서 공식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LG그룹 등은 전경련 탈퇴를 선언했다. 삼성그룹과 SK그룹도 전경련 탈퇴 입장을 사실상 밝힌 상태고, 현대차그룹 역시 이탈 행렬에 동참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사실 전경련 해체는 지난달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과정에서 이미 예고됐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출연한 재벌총수 9명이 참가한 당시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은 전경련을 '정경유착 통로', '권력의 심부름꾼'이라고 표현하며 조속한 해체를 요구했고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다만 전경련을 어떤 방법으로 해체하는게 가장 바람직한 지를 두곤 의견이 갈리는 상태다. 한편에선 전경련이 존립근거를 상실한 만큼 무조건 해체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신대 교수) 소장은 "자정능력을 잃은 전경련은 해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전경련이 소수 재벌의 기득권이 아닌 전체 기업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변하는 단체가 돼야 했고 이익단체로서만이 아니라 회원사에 대한 자율규제기구로서의 위상을 정립해야 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혁신TF를 만들고 외부용역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두 실패했고 이제는 정치권의 요구를 기업들에 강요하는 '양아치'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회원사들의 무관심 속에 내부 상근자들만의 조직으로 퇴화한 전경련은 스스로 강변해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제 해체해야 한다는 게 김 소장은 주장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전경련은 해체돼야 한다고 본다"며 "전경련 설립 이후 긍정적 성과보다는 정경유착 비리나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과 같은 설립 목적에 반하는 일들만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로서 전경련 자체의 역사적 소명은 상당 부분 다한 것 같다. 1960~70년대 설립 당시 요구됐던 역할은 소화했다고 본다"며 "지금 시점에서는 다른 역할을 찾거나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경련 산하의 씽크탱크(think tank)가 비즈니스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처럼 보여지지 않게 연구 성과로 증명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송덕진 극동미래연구소 소장은 "전경련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라면서도 "해체론에 대해서는 전경련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초국가적 아젠다를 연구하는 연구단체나 미국의 경제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처럼 기업 이익을 대변하되 정경유착 고리는 끊어낸 새로운 조직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lyc@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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