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축제 같았던 집회" "시위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일본에선 상상도 못한다"
지난해 11월26일에 열린 제5차 촛불집회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 중국 신화통신, 일본 NHK는 이 같이 보도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든 시민은 서울 150만명, 지방 40만명 등 190만명(주최측 연인원 집계 방식, 경찰 일시점 최대인원 집계 방식으로는 33만명).
일주일 후 6차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까지 단일 집회 최대 규모 기록이었던 이날 시위로 인해 연행된 시민 수는 '0'이다.
말그대로 완벽한 '평화집회'였다. 국내 집회문화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은 물론 전 세계에 대한민국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강력하게 보여준 쾌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000만 인파가 "비폭력" 한목소리
'비선실세' 최순실(61)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에 손을 댔다는 '태블릿PC' 소식이 전해지면서 본격 시작된 촛불집회는 10회에 걸쳐 1000만명(이하 연인원 기준) 참여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랄만한 증가세이지만 이 역시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를 직시한 시민들의 분노는 들불 번지듯 확산됐고, 지난해 11월 12일 3차 집회에서는 서울에서만 100만명이 찬바람을 맞으며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이후 지방에서도 촛불집회가 본격 시작된 4차 집회에서 전국 96만명이 모였고, ▲5차 190만명 ▲6차 232만명 ▲7차 104만명 ▲8차 77만명 ▲9차 70만명 ▲10차 110만명이 참여하면서 100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박 대통령 국회 탄핵안 가결(지난해 12월9일) 이후에도 황금같은 주말 저녁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 수는 361만명(지난달 10일 7차 촛불집회부터)이다.
집회의 경우 특별한 지휘 아래 있어도 인파가 늘면 늘수록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흥분, 난동, 폭력 등 돌발행동은 언제든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암 월드컵경기장(수용인원 약 8만명)과 잠실 야구장(2만6000명) 100번을 동시에 꽉 채우는 엄청난 인원이, 그것도 권력을 향한 분노·실망·좌절을 안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특정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평화집회를 완성시켰다.
10차례에 걸친 집회에서 가장 많은 연행자 수가 나온 건 지난해 11월12일에 열린 3차 촛불집회 때다. 당시 경찰은 폭행을 행사하거나 해산명령에 불응한 시민 23명을 연행했다가 다음 날 전원 석방했다.
이후 7번(4~10차 집회)에 걸쳐 879만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한데 모였지만 연행자는 없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참가자 중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돌발행동의 기미만 보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비폭력"을 외치고, 종료 후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작은 역사'였다.
◇평화집회는 이미 '정착'…'상향식 민의' 활성화 되나
2016년의 촛불집회를 분수령으로 '평화시위 문화'는 이미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장 주된 이유는 거듭된 연행자 '0의 신화'가 순수하게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한 차례 당 평균 100만명이 모였다.
이는 지휘를 담당하는 특정 세력이 있다고 해도 완벽한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규모이며, 그런 환경 하에 이뤄진 평화집회라면 향후 사안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무너질 가능성이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3개월 간 이뤄진 이번 대규모 집회는 참여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평화의식이 확산되며 차분히 마무리됐고, 이 같은 토양 위에서 여당 의원들까지 가세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뚜렷한 결과가 도출됐기 때문에 그만큼 단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이번 평화집회는 누군가의 지도나 교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규모로 모인 시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특징이 있다"며 "현장에서 어떤 부담스런 행동이 나오려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만류에 나서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 것만 봐도, 시민의 선에서는 무언가 더 있어야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평화시위 문화는 이미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무르익은 의식이 결정적 계기였지만 경찰과 법원의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촛불집회 현장에서 경찰은 집회 참여자들을 자극할만한 과잉진압을 하지 않았다.
법원은 사상 최초로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을 허용하며 시민들의 노력에 화답했다.
전 교수는 "현재와 같은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에 경찰의 도발적 진압이나 법원의 불필요한 제한만 없다면 평화시위 문화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민들의 동의와 결집으로 대통령 탄핵안 가결까지 이끌어 낸 것을 계기로 이른바 '상향식 민의' 형성의 시도도 나오고 있다.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올해 1월을 '국민대토론의 달'로 전개해 나가자고 제안한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퇴진행동이 내놓은 국민적 토론의 주제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이며, 국민토크 홈페이지(www.citizen2017.net)를 통해 토론 결과를 받고 있다.
퇴진행동 시민참여특별위원회 소속 이미현 활동가는 지난해 12월24일 열린 9차 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정국을 주도해 온 촛불의 광장민주주의를 일상으로 확장하고 우리 사회의 과제를 국민들이 합의하자"고 취지를 설명했다.
전 교수는 "지금까지 민의가 모일 수 있는 장치는 정당이든 어디든 사실 여론조사 정도 밖에 없었다. 그동안 시민들은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틀 안에서 선택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기획을 하고 프레임을 짜서 위로 올리는 건 막혀있었던 셈"이라며, "어떤 새로운 시도가 나온다는 건 이전의 것이 낡거나 제 역할을 못했다고 다들 동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촛불집회 이후 민의가 모아지는 기존 과정에 새로운 시도가 더해진다면 그 자체로 지켜볼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af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