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안보 불안정성 대비해야
경제혁신 이끌어낼 리더십 긴요
【세종=뉴시스】이예슬 기자 = 한국경제가 기로에 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8년만에 처음 올해 성장률을 2%대로 낮춰잡을 만큼 장기 저성장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간다는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지난 50년간 우리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이 뒷걸음질을 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 파고와 미·중 분쟁에 따른 글로벌 통상 환경은 엄혹하기만 하다. 소비 투자 일자리 증 모든 내수 지표는 빨간불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마저 줄어들면서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향 곡선을 긋고 있다.
미국이 금리상승 국면으로 전환하면서 1300조를 넘어선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있다. 일시적인 경기 하강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심각해지는 판에 대내외 리스크까지 겹친 상황이다. 한마디로 한국경제는 복합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는 이런 위기를 돌파할 힘도, 방책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모델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만큼 내수 수출 균형경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바뀌고 있다는 징후는 희미하다.
내수를 키우고 서비스업을 육성해 활로를 만들어내야 한다거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으면 혁신도, 성장도 어렵다는 지적만 무성할 뿐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다.
물론 너무 비관할 필요도 없고, 지나친 비관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의안 가결 직후 외국인투자기업과 주한 주요국 상공회의소 대표들이 모인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경제는 그간 수많은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왔지만 위기에 더 강한 모습으로 한 단계씩 도약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외환위기를 최단기간에 극복했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에는 경상수지 세계 4위, 외환보유고 세계 8위라는 최고 수준의 대외 건전성도 갖추게 됐다."
최근 20년의 한국 경제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굵직한 사건을 겪으면서도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기적을 보인 게 사실이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낙관적 믿음은 필요하다. 하지만 상황을 오판하거나, 닥친 위기를 터무니 없이 외면하는 구실이 돼선 안된다.
2017년 한국 경제는 분명 위기이고, 거친 가시밭길을 통과해야 한다. 구조적 저성장이 현실화되고 있고 산업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문제 등 각종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탄핵정국과 조기대선이라는 정치 이벤트가 경제 위기로 직결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대내 리스크에 더해 미국 기준금리 인상 본격화와 트럼프 행정부 출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가능성, 브렉시트 본격화, 프랑스 대선과 독일 총선 등 유럽의 정치 일정도 대외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은 가득한데 눈에 띄는 호재는 없는 현 상황을 우리 경제가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안타깝게도 민간 경제연구원은 물론이고 정부의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말 내놓은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제시했다. 정부가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제시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수출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그나마 버텨주던 내수마저 빠르게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는데다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던 건설 및 부동산 경기도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는 "저유가에 따른 소비확대 효과가 사라지는 가운데 소비세 인하 종료, 김영란법 시행 등 정책방향도 소비활력을 낮추는 요인"이라며 "최근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불안 심리도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중장기적인 잠재성장세의 저하 흐름과 단기적 수요 둔화가 맞물리면서 성장세는 2017년은 지난해에 비해 뚜렷하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달러 강세 상황에서 수출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높아지지 못할 것이고, 보호주의 흐름 강화로 통상환경이 악화되면서 수출이 성장을 이끌 정도로 활력이 높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2.6%라는 수치도 지나치게 긍정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4%를 제시했고 LG경제연구원은 2.2%, 한국경제연구원 2.1%를 내놨다. 지난해 9월 2.6%를 전망했던 현대경제연구원도 3개월만에 수치를 0.3%포인트 끌어내려 2.3%로 수정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정치 리스크의 불안정성은 파급영향이 거대해 조기에 해소되지 않을 경우 2017년 상반기 경기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그럼에도 현실적 문제로 정책 당국이 경기 하방 리스크에 대응할 여력은 제한돼 보인다"며 하향조정 이유를 밝혔다.
이호승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6%로 잡았고, 해외 투자은행(IB)들의 평균도 2.4% 수준으로 2%대 초반 전망은 소수에 속한다"며 "정부 전망은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된 정책효과 0.2%포인트를 감안해 2.6%를 달성하겠다는 정책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엔 대응책을 마련해 앞으로 더 치열해질 글로벌 패권다툼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을 뜻하는 'G2 리매치'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안보 불안정성 고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대경제연구원의 판단이다.
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패권경쟁에 따른 글로벌 정치·경제 지형의 변화가 예상된다"며 "한국은 실리 중심의 균형외교 강화로 이익 극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고래 싸움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려 새우 등 터질 수 있는 만큼 올 한 해 동안의 노력이 한국 경제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는 지난 50년간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발전 모델이 수명이 다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저성장 국면에 적합한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내부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혁신하는 곳만이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은 "앞으로 통상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될 경우 한국경제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며 "우리 경제를 혁신친화형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켜 외부의 어려움에도 견딜 수 있도록,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ashley8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