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의 딸 '미스 줄리'와 남자 하인 '장'이 서로를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때 그 민낯이 드러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남녀 관계의 성별을 넘어서는 계급, 도덕 등의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전복의 불안과 쾌감이 오묘하게 공존한 불협화음의 분위기가 극에 맞물리는 이유다. 신경질적인 현악기 선율이 어긋난 화음에 단조를 더한다.
생존 당시 노벨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도발의 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전위적인 대본은 드라마틱한 선율을 들려준다.
미스 줄리와 장의 권력 지배 관계는 수시로 바뀐다. 선천적인 계급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분명하게 나누는 듯하다가, 신분 상승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지닌 장으로 인해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성관계를 맺은 뒤에는 순식간에 정신적, 정서적 우위가 뒤바뀐다.
극이 긴장감을 갖고 굴러가게 하는 커다란 바퀴는 헤겔이 말하는 '인정투쟁'이다. 삶은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투쟁과 같다는 말이다.
특히 공감의 농도가 짙은 부분은 미스 줄리가 파국으로 치닫는 부분이다. 올해 한국 여성들은 각종 수난으로 고단한 한해였다. 에너지가 고갈되도록 밤새 외치고, 싸우고, 울고, 웃음에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감히 위로해주고 싶어진다.
미스 줄리의 불안한 정서를 깊게 체화한 대신 발산의 에너지로 끌어 안은 황선화의 분투는 그래서 칭찬할 만하다. 무대 위 팜 파탈 배우로 통하는 연희단 거리패 배우 윤정섭의 장은 이번에도 치명적이다.
안기는 코발트 빛 무대 위로 갈피를 못잡는 욕망을 상징하는 듯한 새빨간 사과가 나동그라질 때 미장센은 그로테스크한 몽환성을 준다. 관객의 호응으로 공연이 1회 추가됐다. 19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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