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누구나 아는 흔한 일이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얼마 되지 않는다.
수많은 의혹에도 남편을 쉽사리 내치지 못한다. 참지 못한 채 밖으로 쏟아내야 직성이 풀려도 아직 그럴 수 없다. 의혹이 의혹으로 끝나길 바라기도 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믿고 싶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을 향한 분노와 배신감은 극으로 치닫는다. 그래도 여전히 믿고 싶지 않다. 외면할 수만 있다면 외면하고 싶은데 고개를 숙여도 마음 한구석이 영 신통치 않다.
시간을 끌어봐야 이득이 없다. 자잘한 의혹들이 오히려 속을 더 긁어낸다. 정황상 그럴듯하게 소설을 써대 보지만, 아내에게 돌아오는 건 피할 수 없는 비난의 화살이다.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더 고통스럽다. 딜레마다.
다른 사람은 알면 안 된다. 억울한 마음에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남편의 치부는 가릴 수 있을 만큼 가리는 것이 '미덕'인 이 사회에서는 더욱 용납될 수 없다.
분노와 배신감이 극에 달할 때 이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야 하는 사람을 만난다.
아내의 분노와 배신감은 고스란히 돈이 된다. 돈이 있어야 그를 만날 수 있다. 다른 것은 굳이 필요 없다. 돈으로만 맺어진다. 대신, 비밀을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까칠한 훈계도 없다. '불문율'이다.
누군가의 뒤를 밟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은 주연 배우만큼 비중이 크지 않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며, 단 한 번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사라지면 그뿐이다.
그렇게 또 한 편의 '불륜 드라마'의 서막이 오른다. 그는 어디까지나 조연이다. 선을 넘어서도, 흔적을 남겨서도 안 된다. 맡은 역할만 수행하고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흔한 불륜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까지….
◇ 아저씨, ○○○이랑 ○○모텔 들어갑니다
그를 처음 만난 지난 17일 오전 10시. 그와의 '접선'은 몇 차례 약속 장소를 변경한 뒤에야 간신히 이뤄졌다. 연락처라곤 휴대전화 번호 한 개뿐. 서너 번 신호음이 울린 뒤 전화를 받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지못해 만나겠다는 듯이 최종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는 기자인지 알면서도 혹여나 수사기관이 따라붙을지도 모를 일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첫 만남부터 순탄치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짙게 선팅된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유리창 밖으로 한 남성이 연신 손짓했다. 그의 표정엔 일순간 당혹감과 의심이 교차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악수를 청했다. 까맣게 그은 얼굴은 웃음을 경계했다. 자신을 이른바 '흥신소'로 불리는 사설 심부름센터 실장이라고 소개한 박모(39)씨는 늘 똑같은 오리털 점퍼를 입는다. 아직은 겨울 기운이 완연하지 않지만, 남의 뒤를 밟는 일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란다.
미행과 잠복을 거듭하는 그의 만반의 준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차량 조수석에는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와 안경형 캠코더, 초소형 몰래카메라, 녹음기 등 추적에 필요한 각종 장비가 검은 플라스틱 박스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의 그는 숫제 반말이었다.
"와 따라 다닐라 카노, 오늘 집에 못 갈 수 있다 안 카나…."
그는 마뜩잖은 얼굴로 빼곡하게 적어 놓은 수첩을 들여다봤다. 생각을 가다듬는 듯했다. 얄팍한 수첩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뭔가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손때가 묻은 그 수첩을 열어보니 의뢰인 남편의 그간 행적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굉장히 꼼꼼하다"고 슬쩍 치켜세웠다. 그러자 그는 "이런 일 할라믄 기본 아닌 겨"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러나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나흘 넘게 의뢰인 남편을 추적한 그는 보란 듯이 내달렸다.
도착한 곳은 경기도 모처의 한 기업체 건물. 의뢰인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다. 이날 지루한 추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할 만한 일도 없고, 돈 때문에 했다 안 카나, 해본께 일이 을마나 빡시다고…"
그의 말마따나 다른 사람의 뒤를 캐는 일은 '빡센'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했다. 의뢰인 남편이 얼굴 한 번 내보이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시간이 한참이나 계속됐다. 끼니는 좁은 차 안에서 김밥 한 줄로 때웠다. 기다림이 때로는 하염없이 길어지기도 한단다.
오후 2시가 넘자 남편의 검은색 차량이 회사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미행을 들키지 않기 위해 승용차 3대를 번갈아 사용한다. 똑같은 차량이 계속 따라오면 눈치를 챌 수 있기 때문이다.
"눈치가 빤하면, 똑같은 차가 계속 쫓아가면 걸리니깐 차가 따라가다 슬쩍 빠지고, 오토바이나 딴 차 갖고 붙어 갖고 따라간다 아이가…."
그의 수첩에는 남편의 다음 행선지가 적혀있었다. 경기도의 어느 모텔촌. 예상은 적중했다. 남편 차량은 이내 모텔촌 마지막 횡단보도와 맞닿은 '○○○○' 모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약속이라도 한 듯, 불과 5분 남짓한 시간에 한 여성이 운전하는 차량이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남편은 이 여성과 껴안는 등 애정 행각을 벌인 뒤 모텔 출입문으로 들어갔다.
그는 남편과 내연녀의 불륜 행각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차창에 바싹 달라붙었다. 익숙한 듯 빠른 손놀림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영상 기록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 안은 순식간에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의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과 미행 과정을 비교하며 노트북으로 추적 일지를 정리했다. 이후 휴대전화로 의뢰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에는 '아저씨, ○○○이랑 ○○○○모텔 들어갑니다'는 문구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첨부됐다.
남편은 날이 저물고서야 다시 주차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곧장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담긴 사진과 영상은 의뢰인의 이메일로 전송됐다. 뒤가 구린 짓은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결과를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는 불륜 드라마와 닮았다.
◇ 부르는 것이 값…불법 판치는 흥신소
수화기 너머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풀이할 기회와 대상을 엿보고 있었던 탓일까. 그의 문자를 받은 의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화기 너머로 육두문자 섞어가며 한참이나 분풀이를 쏟아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기자에게도 생생하게 들릴 정도였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에 대한 분풀이였을 것이다. 눈치 빠른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말벗이 돼줄 수밖엔 없었다. 참다못해 남편의 외도를 직접 확인한 아내의 신세 한탄을 듣는 것으로 이날 추적이 마무리됐다. 추적의 끝은 늘 그렇다.
그는 흥신소에서 일한 지 8년가량 됐다고 했다. 요즘 흥신소는 '상한가'란다. "의뢰하는 사람이 많냐"는 물음에 "엄청 많다 아이가…"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1년 전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수사기관이 더는 배우자 불륜 문제에 개입하지 않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담을 느낀 아내가 늘어난 덕이다.
흥신소에는 "고등학교 때 첫사랑을 찾아 달라"부터 "떼인 돈 받아 달라" "가출한 딸을 찾아 달라" "예비 사위를 미행해 달라" "집 나간 개를 찾아 달라" 등등 별의별 의뢰가 다 들어온다.
그러나 80% 이상은 배우자 불륜을 의심해 뒷조사나 미행 등을 해달라는 의뢰다.
그가 속한 흥신소는 의뢰인에게 연락이 오면 파트별로 나눠진 각 팀이 일정을 확인한 뒤 가장 적합한 팀과 의뢰인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처음부터 직접 만나 상담하지 않는다. 각 팀의 우두머리인 실장이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충분히 상담한 뒤 의뢰인과 직접 만난다.
이들과 의뢰인 사이에는 일종의 원칙이 있다. 거래는 현금으로만 성사된다. 먼저 일정액의 착수금을 낸 뒤 추적이 끝나 각종 불륜 증거를 받고 남은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거래 금액은 일주일 기준으로 평균 300만~500만 원. 추적 기간이 길어지거나 난도가 높으면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정해진 비용은 없다. 실상은 부르는 것이 '값'이다.
각 파트별로 서너 명이 한 팀이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 명의로 개설된, 이른바 '대포폰'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다. 사무실도 수시로 옮긴다. 이 모두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누군가를 추적하는 그들이 오히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린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 "법을 다 지키면 우예 먹고 사노"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그의 휴대전화들이 연신 울려댔다. 사용처가 모두 정해진 대포폰 6대가 수차례 울렸다. "사람 찾는 일이라면 실패한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이 예사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법을 다 지키면 우예 먹고 사노, 먹고 살라믄 어쩔 수 없다. 일주일 추적하는데 기본이 300(만원)이다 300(만원)…."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배우자 불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의뢰인에게 지켜야 할 법 따위는 공허하다. 배우자의 배신 행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더 많은 위자료를 받으면 그뿐이다.
무작정 추적하거나 미행하는 건 옛날 방식이다. 먼저 개인정보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브로커를 통해 추적 대상자의 가능한 모든 정보를 취합한다. 브로커의 이름도, 성도 알 길이 없다. 정보 브로커는 오로지 대포폰으로 연결된 '핫 라인'을 통해서만 접촉할 수 있다.
정보를 취합한 다음 추적 대상자의 행적이 의심스럽다면, 고전적인 수법이 동원된다.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뒤 본격적인 미행에 나선다. 최근에는 초소형 위치추적기와 차량 진동이 있을 때만 반응하도록 설계된 위치추적기가 주로 사용된다.
또 추적 대상자의 개인정보를 얻기 위해 여직원을 통신사나 택배업체 등에 위장 취업시키는 경우도 있다.
흥신소는 별다른 설립요건이 없고, 신고제로 운용된다. 누구나 신고만 하면 운영할 수 있다. 행정기관이나 수사기관의 관리·감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탓에 불법 행위를 쉽게 저지를 수 있다.
흥신소의 업무 대부분이 현행법상 '불법'이다. 개인의 동의 없이 위치정보를 수집하거나 이용 또는 제공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한 의뢰인에게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흥신소의 행위는 정당한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아니, 적어도 이들 세계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누군가 흥신소에 한 가닥 희망을 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sky032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