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온 한국, 창극은 첫 작업 특별한 감정"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다 오페라 본후 인생 전환
LA UCLA 서 후학 양성 "디자인보다 인간애 강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국립창극단 신작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2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은 다국적 창작진으로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의 세계적인 연출가 옹켕센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무대 디자이너인 한국계 미국인 조명희(51)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무대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오페라·연극·무용·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창극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옹켕센 연출과 인연으로 이번 작업에 함께한 그는 연출이 제안한 ‘미니멀리즘’을 무대 미술에 구현했다.
조 디자이너는 이들을 비롯해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곳에서 정처 없이 기다리고 머물러야만 하는 여성들의 삶은 현재의 터미널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으로 조심스런 위로를 건넨다.
판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고, 한국을 25년 만에 찾았다는 조 디자이너를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그리스 비극에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신화적인 요소가 있어요. 창극을 잘 모르지만 소리를 듣고 그 내용이 잘 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역동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부분이요. 어렸을 적에 들었던 것이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제대로 들으니 특유의 솔(soul)이 진실하게 느껴졌어요. 특별한 감정과의 접속이었죠. 특히 ‘이모셔널 저니(emotional journey)’라고 해야 하나. 감정이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한국말보다 영어가 익숙한 조 무대디자이너가 미국에 건너간 건 13세 때였다. 부모를 따라 현지로 이주했다. 아시아 여성의 사회 진출 벽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이다.
조 디자이너는 하지만 “아시아 문화권의 감수성이 특별하게 작용했다”며 문화적인 차이로 크게 힘들었던 건 없었다고 했다. “어릴 때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디자인에 저도 모르게 아시아적인 감수성이 묻어있었나 봐요. 사물 등을 대하는 시선도 다르고요. 그런 점이 미국에서 차별화가 됐죠.”
“오페라의 무대와 그 위의 장식, 의상 등 모든 디자인이 정말 멋지고 화려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메커니즘도 대단했죠. 무엇보다 그래픽 디자인의 2차원작인 것을 넘어 3차원적인 공간에 그렇게 다양한 걸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경이로웠죠.”
이후 예일대 드라마 스쿨에서 무대 디자인으로 석사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무대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이후 경력은 화려해졌다. 뮤지컬 ‘피핀’으로 2013 토니상을 받은 연출가 다이앤 파울루스의 미술적 동지로 오페라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등 그녀의 대표작들에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유명한 작가 이브 엔슬러의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조 보니 연출·2012~2014 미국·남아공·프랑스 투어) 등 다수의 작품에 무대와 의상 디자이너를 맡았다.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를 비롯해 홍콩·상하이 디즈니랜드 특별 공연의 무대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무대 디자이너는 "공학적인 건 물론 예술적인 감각, 인문학적인 지성까지 겸비해야 한다."
UCLA에서 존경받는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 무대 디자이너를 위한 조언을 청했다.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인간애를 갖는 것이 중요하죠. 그걸 무대 위에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의견을 조정해가는 걸 배울 필요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뿐 아니라 시사, 철학 등에 대해서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상생, 조화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삶이라는 무대 역시 잘 지어온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물론 업앤다운이 있었죠. 근데 제가 가장 인생에게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가 디자인과 가르치는 일인데, 감사하게도 그 둘을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아직도 그 두 가지 일이 저를 흥분하게 만들어요. 그것들을 여전히 즐기고 있어서인지 무대 디자인일은 제게 삶의 에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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