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50년째 엄마등에 매달린 아이 백영수 화백

기사등록 2016/09/21 12:57:43 최종수정 2017/11/14 10:51:54
【서울=뉴시스】백영수 화백이 1988년에 그린 창가의 모자 앞에서 귀를 쫑긋한채 질문을 받고 있다.
'이중섭 친구' 신사실파 살아있는 전설
95세 고령 몸 쇠약해졌지만 늘 드로잉
아트사이드갤러리서 23일부터 개인전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창가의 모자','산동네의 모자', '들판의 모자', 아이는 엄마등에 꼭 붙어있다. 아이를 업어서일까. 엄마의 얼굴은 모두 가로로 된 계란형으로 기울어져 있다.

 "엄마는 사랑입니다. 아름다움이지요."

【서울=뉴시스】나르는 모자. 1988. 백영수 화백 개인전이 23일부터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린다. 나르는 모자. 1988
유난히 등에 꼭 매달려 엄마와 한 몸같은 그림, '창가의 모자' 앞에서 백영수 화백이 느릿느릿 말했다. "아이하고 엄마는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 품을 생각하고 엄마는 아이를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

  "아이가 50년째 엄마 목에 매달려 있는거에요"

 백화백의 그림자가 된 부인 김명애 여사는 "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것 같다"고 대신 말했다. 백화백이 두살때, 엄마는 남편을 잃었다. 오빠가 있는 일본으로 아이를 데리고 간 엄마의 나이는 고작 스물살도 안됐다.

 "그렇다보니 엄마 사랑을 잘 못받지 않았나 싶어요."

【서울=뉴시스】백영수, 정오  Midday, 2012, Oil on canvas, 162x130cm
백화백이 유독 '모자상'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부인은 "모성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고 넌지시 얘기했다. "이전에도 싸리문가에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있는 그림, 백일몽을 그렸었어요. 이후 1971년 딸을 낳고 달라진 것 같아요. 1976년부터 모성을 표현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고개를 왜 가로로 하고 있냐고 묻자 백화백은 "생각하는데 똑바로 있으면 이상하잖아"라고 했다. 부인은 "이 사람은 그림속 아이처럼 늘 몽상에 젖어 있고, 자기세계에 충실한 사람"이라며 남편을 힐끗 보고 웃었다.

  50년째 '모자상'에 매달려 있는 그는 이제 엄마 등 대신 휠체어에 앉아 있다. 올해로 95세, "다른 사람은 다 죽었는데 나만 운이 좋아 살아있다"는 그는 1947년 결성된 '신사실파'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작가다.  

 백화백은 1922년 수원에서 태어나 1940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에 입학, 사이토요리 선생에게 유화를 배웠다. 1944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귀국, 목포고등여학교와 목포중학교 미술교사로 근무했다.1946년 25세에 조선대학교 총장으로부터 미술과 창설을 의뢰받는 등 남도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뉴시스】2011년 파리에서 귀국하면서 비행기에 그린 그림.
1947년 서울로 올라온 그는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등과 함께 '새로운 사실을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해방후 최초로 추상적 경향의 화풍을 추구했다. 1950년대 후반 격정적인 화풍을 지난 앵포르멜과는 달리 대체로 서정적인 추상의 세계로, 신사실파는 한국 추상회화 형성과 전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70년대 당시 화가들의 로망은 파리였다. 백화백도 경기 의정부 집을 남겨두고 1977년 파리로 날아가 '재불화가'로 30년간 살았다. 나라 인종 구분이 없는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담긴 '모자상'은 파리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블란서 요미우리 전속작가로 생활비 걱정없이 살았으니까요." 

 2011년, 34년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백 화백이 귀국 비행기에서 연필로 그린 그림은 세월이 흘러도 아이같은 순수함이 넘친다. 여전히 엄마등에 업혀있는 아이, 입가에 수염이 자랐다. 백화백은 수염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이게 나야"라고 했다. 

 그림속 인물은 얼굴을 가로로 (모로)돌린채 아련한 애수가 흐른다.

【서울=뉴시스】백영수, 말  Horse,  2016, Box, label, paper collage, 75x95cm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화업 70주년 개인전을 연후 4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구순이었던 그때와 달리 화백은 몸이 부쩍 쇠약해졌다. 귀도 어두워졌고, 입도 어눌해져, 혼자서 걷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리는건 잊지 않았다. 종이만 있으면 색연필로, 연필로 그린 그림은 더 단순해지고 순해졌다.  

 부인은 백순을 바라보는 아니 엄마등에 매달린 아이가 내려온 것처럼 쪼그려 앉아 천진난만한 세계에 빠졌다고 했다.

 지난해 목욕탕에서 넘어진후 거동이 불편해졌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앉아있는 곳 어디서나 꾹꾹 눌러 그림을 그린다. 항상 주머니만한 빈노트와 색연필을 꺼내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린다. 그리는게 지겹다싶으면 종이상자를 펴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른걸 만들어냈다. 색감이 고운 작은 종이박스는 그의 장난감이 됐다. 그래서 빨간 말같은 콜라주작업도 탄생했다. 하지만 흰 종이에 여전히 그려지는 건, 엄마와 아이가 붙어있는 그림이다.

【서울=뉴시스】백영수, 나르는 모자  Flying mother and child>, 2016, Colored paper and pen on board, 18x18cm
그림을 본 윤진섭 평론가는 "한마디로 놀이의 세계에 푹 빠져 이해를 초월한 탈속의 세계에 도달 한 듯 하다"고 전했다. "빨강 파랑 노랑 녹색등 몇가지 색펜으로 사각형 가장자리를 뺑 둘러 점을 찍은 작품은 여백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무심의 경지는 아마 그처럼 인생 경론의 극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면 얻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무심의 경지야 말로 백영수가 70여년의 화업을 통해 체득한 달관과 체념의 결과일 것이다."

  "백화백의 드로잉전을 했으면 좋겠어요." 부인의 바람이 아트사이드 이동재 사장에 전해졌다.

 이동재 사장은 "올 초 백화백님과 그림을 보는 순간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소외된 작가 발굴과 지원은 화랑의 역할"이라고 했다. 단색화와 팝아트로 쏠림현상이 심한 화랑가다. 특히 중소상업화랑에서 잊혀지고 있는 근현대작가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이례적이다.

  "지난해에 사인을 잊어버렸어요. 한글로 쓰는 백.영.수를 잃어버린 듯해요. 이를 악물고선 선 하나를 긋는데 부들부들 떨면서 그리더라고요. 그런데 전람회를 한다니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 올초까지 그린 드로잉, 콜라주를 액자에 담아 40여점을 걸었다.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백영수 화백과 김명애 여사는 아이가 된 듯했다.

 휠체어에 앉아 무심한 표정의 백화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를 잊지 않고 찾아줘서 너무 고맙고, 기분이 좋아요. 화가가 좋은 전람회하는 것 만큼 좋은 일이 어디있습니까?"

 또 느리면서도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 사랑해주세요."  전시는 23일부터 10월 23일까지 열린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