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선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구두공장 직원 ‘로렌’ 역의 배우 김지우(33)가 ‘연애의 흑역사’(The History of Wrong Men)를 부르자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닌 걸 알면서 빠져들지. 개 버릇 남주겠냐~” 익살스런 노랫말에 신나는 음악, 리듬에 몸을 맡긴 김지우가 무대에서 빛나고 있다.
최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만난 김지우는 “저도 ‘연애의 흑역사’가 많아요. 바보 같은 연애을 많이 했었다"며 웃었다.
김지우는 ‘닥터 지바고’의 ‘라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라 오하라’ 등 뮤지컬에서 주로 고전적이고 우아함을 뽐냈다.
그런 그녀가 흑역사의 주인공이라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굉장히 멋지고 예쁜 연애만 하잖아요. 로렌은 현실적이고 똑 부러진 여성이지만 연애에는 ‘허당’이에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기도 하죠. 아무리 똑똑한 여성이라고 연애에서는 실수를 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공감을 사는 것 같아요.”
“‘닥터 지바고’ 등을 했을 때 그래서 어색했죠. 근데 이제는 로맨틱 코미디 물이 낯선 거예요. ‘킹키부츠’ 첫 연습 때도 활발해야 하는데 눈치 보고. 근데 공연에 들어가니 제 성격이 나오고 있어요. 호호.”
‘킹키부츠’ 국내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 2014년 말 국내 초연 당시 로렌 역은 정선아와 최유하가 나눠 맡았다. 2달 남짓 공연하는 이번에는 김지우 홀로 로렌을 연기한다.
“8년 전 ‘싱글즈’ 나난을 연기할 때 두 달 동안 원캐스트를 맡은 적이 있어요. 저는 오히려 원캐스트가 계속 흐름이 이어져 덜 힘들더러고요.”
특히 ‘킹키부츠’는 흥겨움에 감동이 버무려져 힘이 난다고 눈을 총총거렸다. 팝 디바 신디 로퍼가 작곡한 ‘킹키부츠’는 파산 위기에 빠진 신사화 구두공장을 가업으로 물려받은 ‘찰리’(이지훈·김호영)가 ‘롤라’(정성화·강홍석) 같은 여장 남자를 위한 부츠인 ‘킹키부츠’를 만들어 틈새시장을 개척해 회사를 다시 일으킨다는 유쾌한 이야기다. 찰리와 롤라가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 한 발자국 씩, 성장해가는 과정은 뭉클함도 더한다.
‘킹키부츠’에서는 구두공장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악역처럼 보이는 ‘돈’은 롤라의 약속을 지키며 찰리가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크게 공헌한다. 입체적인 성격의 공장 직원들의 앙상블은 이처럼 극을 떠받치는 한 축이다. “로렌 역시 마찬가지에요. 이 역할이 튀었다면 제가 연기를 잘 못한 거죠. 대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도 로렌은 자기 일인, 박스에 신발을 포장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한 뒤 2005년 뮤지컬에 발을 들인 김지우는 2013년 셰프 레이먼 킴과 결혼 이후 딸을 낳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전에 활발하던 그녀가 차분해진 이유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까 제 행동이 아이를 헤아리는데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러워지고 예민해졌어요. 철이 없어 천방지축 행동할까 겁이 나기도 하고.”
하지만 로렌이 긍정적인 캐릭터이다 보니, 자신 역시 다시 밝아지는 듯하다고 털어놓았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에요. 로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죠.”
‘킹키부츠’는 김지우에게 새삼 동지애도 심어주고 있다. “2막에서 찰리와 롤라가 다투는 신에 두 캐릭터에만 집중됨에도 다른 배우들이 절대 집중력을 놓지 않고 있어요. 재봉틀을 돌리는 등 세부적인 연기에 더 신경 쓰고 있죠. 이번 배우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있죠. 이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고 함께 열심히 하고 싶어요.” 11월13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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