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문학일까?'…정지돈 첫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기사등록 2016/06/08 13:50:13 최종수정 2016/12/28 17:10:58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정지돈(33)은 현재 문단에서 가장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작가다. 등단 이후 발표작마다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래 '지식조합형 소설' '도서관 소설'을 쓴다는 꼬리표를 달아왔다. 사실과 상상을 조합해내는 그 만의 긴 문장과 문체 때문이었다.  

 작가 스스로 "세계의 인용의 인용"이라 이름 붙인 그의 소설은 한 세기 이전의 인물과 작품들을 차용해나가는 과정이 어떻게 한 편의 소설로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등단 이후부터 올해 초까지 내놓은 단편 9편을 모은 정 작가의 첫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는 그의 개성의 완성형이라 일컬을 만하다. 책 제목은 작품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문구지만 소설에 대한, 세계에 대한 그의 도전 의식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정지돈 소설에서는 ‘이것도 글일까, 이것도 문학일까’라는 질문들이 반복된다. 책에 실린 단편 '미래의 책' 속 걷거나, 앉아서 쉬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조차 제약 없이 읽고 쓰는 주인공처럼 정 작가는 자신이 읽어낸 것을 체화한 뒤 다시 새로운 글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이어 나간다. 글 뒤에 따라 붙은 줄줄 흐르는 듯한 '참고문헌'이 '작품으로 이행'하며 한 편의 소설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 작가의 문장은 길다. 진지한 고백이다 싶으면 인용으로, 자조인가 싶으면 유머로,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문장은 궤변으로 마무리된다.

 중심에는 유머가 있다. "저의 궁극적인 목적은 극우파에게 유머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을 웃기는 데는 선수지만 정작 자신은 어디에서 웃어야 하는지 모르죠"('눈먼 부엉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죽음과 문학, 테러리즘을 결합한 진지하고 유머러스한 미래주의의 공포 버전에 대한 톰 매카시의 꿈과 사이먼의 목표가 결합된 것"이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비꼬고 자조하는 가운데서도 울림을 전한다. "매력적인 건 대화의 내용보다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라 믿는 정 작가의 믿음 때문이다.

 다시 '눈먼 부엉이' 속 문장이다. "나는 가끔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 말이나 하고 싶지만 아무 말이나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에리크는 자신도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모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게 글을 쓰라고 말했다. 글을 쓰면 삶이 조금 더 비참해질 거라고, 그러면 기쁨을 찾기가 더 쉬울 거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320쪽, 1만3000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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