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사우디 국왕이 즉위한 지난해부터 사우디 경제·정치 위기는 심화됐다. 우선 국제유가 하락으로 사우디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동안 경제 개혁을 시도했지만 지난해 석유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인 72%를 기록했다. 지난 17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등 산유국과의 석유 감산 합의도 불발됐다.
지역 라이벌인 이란은 핵 합의 이후 중동과 국제무대에서 세력을 넓히고 극단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 국가'(IS)의 위협도 높아졌다. 사우디가 개입한 시리아와 예멘 내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70년 넘게 굳건하게 유지한 미국과의 동맹도 예전같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계승 서열 2위이자 사우디 '실세'인 모하메드 빈 살만 부왕세자가 사우디의 미래 청사진을 발표했다.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국영 알아라비야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개혁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비전 2030을 달성할 수 있는 5년, 10년 단위의 중간 계획도 마련했다고 밝혔다.
◇"석유 없어도 살 수 있는 나라 될 것"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경제를 석유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전안에 따르면 사우디는 더 이상 높은 유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2020년 사우디는 석유 없이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석유는 투자 개념으로 다뤄져야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석유를 1차 상품으로 여기거나 주요 수입원으로 갖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사우디는 우선 국영석유기업 아람코 기업공개(IPO)를 통해 지분 5% 미만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아람코의 규모는 매우 크지만 아직까지 그 가치는 평가되지 않았다"며 "우리는 아람코의 가치를 2조~2조500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아람코 지분 매각으로 마련한 자금과 국유지와 건물 등 국영 부동산을 팔아 마련한 수입으로 사우디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 규모를 2조 달러(약 2300조 원)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PIF의 의사 결정은 특정인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 투표로 이뤄진다.
그러나 정부지출과 보조금은 크게 삭감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정부지출을 손보는 작업은 지난해 이미 끝났다며, 이 작업으로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비석유 부문…광산 개발, 무기 국내생산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사우디가 개발할 비석유 부문은 '광산'이다. 사우디는 광산 개발 분야에 9만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매년 70억 리얄(약 2조1400억 원) 상당의 이윤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광산 분야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우리는 광산 분야에 매우 큰 가능성을 보고 있다. 사우디는 전세계 우라늄 6%를 보유하고 있고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이는 또 다른 석유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과 은, 구리, 우라늄, 인산염, 이산화규소와 같은 광물이 묻혀있지만 3~5%밖에 개발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거대한 산업 시장을 만들 수 있고 국가 재정을 충당할 수입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는 국내에서 자체 생산하는 군(軍) 무기 비율도 현재 2%에서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모하메드 부왕세자에 따르면 사우디의 군비 지출은 전세계 상위 3~4위 규모다. 2014년에 4위였다가 지난해 3위로 올랐다.
◇하지 행사 확대, 관광객 유치로 비석유 부문 수입 늘릴 것
사우디는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순례하는 행사인 하지(Hajj)와 움라(소순례·Umrah)에 더 많은 무슬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수입을 창출할 계획이다. 현재 성지순례를 하러 사우디를 방문하는 무슬림은 80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사우디는 2020년까지 1500만 명, 2030년에는 3000만 명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우디는 '성스러운 모스크 2곳의 수호자'(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라고 불리며 하지 관리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하지는 무슬림의 5대 의무에 포함되며 모든 무슬림은 일생에 1번 이상 하지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사우디에는 하지에 참석하는 순례자들이 매년 수백만 명씩 몰려든다.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새롭게 단장한 제다 국제공항과 알타이프 공항이 있어서 이미 기반 시설은 잘 갖춰졌다고 생각한다"며 "사우디에 많은 순례자를 받아들이고 이들이 머물 숙박 시설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메카까지 연결된 철도가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지하철을 새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슬람과 사우디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도 더 많이 개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청사진 발표한 모하메드 부왕세자 누구
미 일간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왕위계승 서열 2위, 국방장관, 아람코 수장 등 다양한 직책을 갖고 있다. 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도 사우디의 군사·경제 권력을 쥐고 실세로 활동하고 있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는 그의 별명이 이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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