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가수로 돌아오는 박인희는 14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콘서트 '그리운 사람끼리' 간담회장을 찾은 70여 팬들의 환호에 수줍은 목소리로 "살아가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 상상 못했다"며 웃었다.
숙명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박인희는 1969년 이필원과 국내 최초의 혼성듀엣 '뚜아 에 무아'로 데뷔해 '약속', '세월이 가면' 등을 불렀다. 1972년 결혼 후 솔로로 전향, 1974부터 1976년까지 6개 앨범을 발표했고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냈다.
1970~80년대 대학생들이 캠프파이어를 할 때마다 부른 '모닥불'을 비롯해 '그리운 사람끼리' '끝이 없는 길' '세월이 가면' '봄이 오는 길'로 큰 인기를 누렸다. '방랑자', '서머와인', '스카보로의 추억', '나무벤치 길' 등의 번안곡으로도 기억된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1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종종 라디오 DJ와 MC 등으로 활동했지만 가수로서는 볼 기회가 없었다.
본래 백발이고 평소 화장을 하지 않고 다닌다는 박인희는 "나를 기억하는 분들이 낯설어 할 것"이라며 "나를 찾아주는 분들에게 예의상, 약간 화장을 했다"고 전했다.
설레고 떨려서 전날 잠을 못 잤다는 박인희는 1987년 펴낸 자신의 책 '우리 둘이는'의 글귀를 읽는 것으로 컴백소감을 대신했다.
"내 이름 석자 뒤에 과로가 따라왔다. … 내가 빵 한 조각을 위해 노래한 적이 있는가. 스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등이다. 특히 "수많은 사람의 환호보다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만큼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담담히 글을 읽어내려가던 박인희는 "그 무렵 내면의 소리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디스크 자키(DJ) 등의 방송을 하고 1년 남짓 노래를 하면서 타성화된 모습을 되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분야의 전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1년도에 이런 마음으로 떠났다."
미국 생활 도중 로스앤젤레스의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자신의 팬을 만나 그녀가 안내하는 추억을 되돌아보기도 했다는 박인희는 "저런 분들을 위해 부족하지만 앨범 하나만 만들자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예전 목소리와 다르다고 자가진단한 뒤 "내가 원하는 건 세월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인희는 4월30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컴백콘서트를 시작으로 일산(5월8일), 수원(5월15일), 대전(5월22일) 등지로 전국투어에 나선다. 70년대에도 개인 콘서트를 연 적이 없어 사실상 데뷔 이래 첫 공연 무대다. 매년 '쎄시봉'의 전국 콘서트를 열어온 콘서트 기획사의 김석 대표가 그녀에게 숱한 러브콜을 보낸 끝에 성사됐다. 쎄시봉 멤버인 송창식이 힘을 싣는다.
지금까지 자신을 기다려 준 팬들에게는 "큰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20대 때 잠깐 1, 2년 활약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노래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모임을 갖고 기다려준 분들에게 감사한다"는 것이다.
김일태 감독이 공연 연출을 맡은 콘서트에도 역시 팬들이 대거 힘을 보탠다. 박인희 팬클럽 회원인 화가 나안나 씨가 '박인희의 히트곡'을 주제로 추상화 67점을 그렸다. 콘서트에서 박인희의 노래와 함께 대형 LED 화면에 선을 보인다.
'박인희 키즈'도 함께 무대를 꾸민다. 박인희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지성미와 청아한 음색을 갖춘 실용음악과 대학생들을 오디션으로 뽑았다. 이들은 박인희의 '젊은 날의 우리들'을 2016년 버전으로 리메이크한다. 이 노래는 풍문여중 시절 친구이자 동기동창인 시인 이해인 수녀와의 우정을 소재로 35년 전 만든 노래로 알려졌다.
아울러 방송 활동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노래도 하지만 MC, 디스크자기로서 박인희도 원한다"며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원하는 분들이 있어 이번 공연이 끝난 뒤 방송과 공연 활동을 병행해나가는 것이 내 꿈"이라고 밝혔다.
곳곳에서 박인희는 여전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녀는 "따로 관리하는 건 없다. 20대 때나 지금이나 비누 세수하고 집에 있을 때는 맨 얼굴이다. 감사하다"며 웃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 모습 그대로 늙어가는 모습과 늙어가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 한다. 주름살, 주근깨, 잡티는 인생을 살아온 흔적이다. 그런 모습이 부끄럽지 않다. 그냥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걸 원한다." 7만~13만원. 쇼플러스엔터테인먼트. 1544-7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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