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궁극목적, 좋은 삶…피글리우치 '번영과 풍요의 윤리학'

기사등록 2016/02/05 08:39:00 최종수정 2016/12/28 16:34:22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행운의 공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일반 공을 이용한다고 생각한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성적을 올렸다. 결론은, 미신은 효과가 있다는 말씀. 미신으로 무장한 사람은 '자기효능감'이 더 높았다(다시 말해, 이들은 실험에서 정해준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컸다). 그리하여 미신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은 대조군보다 훨씬 오랜 기간 자신의 목표를 묵묵히 밀고나갔다. 이 이야기가 말하려는 내용의 인과적 연쇄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우리는 미신을 믿는다 → 미신적인 행위에 참여한다 → 그리하여 자신감 수준이 높아진다 → 그 결과 더 오랫동안 과제에 매달리게 된다 → 그러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291~292쪽)

 "어느 시기에 비만이 되는 경우, 가까운 친구들이 (다른 요인들은 일체 상관없이) 같은 상태가 될 가능성이 무려 57%에 달한다. 이러한 결과는 흡연, 알코올중독, 우울증에도 해당되고, 다름 아닌 행복에도(그러니까, 주관적 심신의 안녕에도) 그 영향이 똑같이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은 좋든 싫든 친구들의 행동에 (좋게든 나쁘게든)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고, 따라서 우리는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할 더 큰 윤리적 의무가 있다."(216쪽)

 마시모 피글리우치(52) 미국 뉴욕시립대학 철학교수가 쓴 '번영과 풍요의 윤리학'이 번역 출간됐다. '최고의 삶'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해답으로서의 지식 등을 담은 책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좋은 삶,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좋은 삶이란 덕의 윤리에 따라 아크라시아(의지박약)를 극복하고 에우다이모니아(번영과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유전자에서부터 이기적이라서 본능과 감정에 충실해야 행복해진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도무지 요령부득인 도덕예찬론 아닌가.

 그런데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우리를 좌절의 구렁으로 한 걸음 더 밀어넣는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계속해서 덕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즉 올바른 이유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처럼 인생을 과제로 이해하는 관점을 따르면, 어느 시점까지 착하게 살다가 이후에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경우,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평가가 폄하되거나 심하게 훼손될 수 있고, 초반엔 대충대충 살았지만 이후에 높은 도덕적 기반을 되찾은 경우 우리는 그런 사람을 기특하게 여길 수도 있다."

 한마디로 에우다이모니아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멈출 수 없는 부단한 과정이란 것이다. 철학과 과학이라는 양대 분야의 전문가답게, 저자는 서로 분리된 두 학문 분야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들을 추출해 자신의 '도덕철학'을 완성한다. 이러한 사유방법론을 저자는 '사이파이(sci-phi, science+philosophy)'로 명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과 과학을 결합해 세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세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능한 최고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상당히 오래된 견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스키엔티아(Scientia)라 했다. 스키엔티아는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보다 넓은 의미의 '지식'을 의미한다.

 저자는 자연주의적 오류에서 벗어나 올바른 도덕판단에 이르는 방법으로 윤리학 및 도덕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반성평형'을 추천한다. "반성평형은 1955년에 넬슨 굿맨이 처음 도입한 개념이며,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도덕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존 롤스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반성평형의 방식은 이름이 암시하듯, 본질적으로 특정한 윤리문제에 대해 우리가 가질 법한 여러 가지 개념, 판단, 직관 사이에서 평형을 추구하려는 이성적 반성의 형태다. 반성평형의 목적은 최대한 일관성을 갖게 될 때까지 우리의 판단과 논리를 끊임없이 수정하여 마침내 '평형'이라고 할 만한 것을 이루도록 하려는 것이다."(250쪽)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하고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과학을 바탕으로 한 철학과 지혜를 찾아가는 사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가 제안하는 '좋은 삶'을 위한 답은 정공법이다. 그토록 많은 지식을 통해 내린 결론이 너무 해맑아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트렌디한 지식이나 패셔너블한 사유가 줄 수 없는 설득력과 힘이 있다. 인간이 이러한 방법으로 긴 시간에 걸쳐 진화해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삶은 우리의 과제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이 과제를 위해 사이파이는 단순한 상식이나 정치이념, 종교적 신비주의보다 우리를 돕기 위해 훨씬 준비가 잘 갖추어져 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다소) 이성적인 동물이며,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합리적 사고를 어떻게 이용할지 깊이 숙고할 수 있다.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347쪽)

 "이성과 직관에 관한 문화적 차이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한국 대학생들은 직관이 논리보다 중요하다고 일관되게 생각하는 반면, 미국 대학생들은 두 접근법의 순위를 반대로 평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는 유럽 태생 캐나다인과 동아시아 태생 캐나다인을 비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로운 부분은, 직관적인 사람이 더 사교적이라는 생각에는 두 집단 모두 동의하지만, 동아시아인은 직관적인 사람이 더 현명할 뿐만 아니라 더 합리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로 미루어보건대, 서양인들은 직관에 좀더 의지하는 것이 현명해지는 길인 반면, 아시아인들은 분석적 사고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용하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121~122쪽)

 옮긴이 서민아씨는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돕는다는 말이 잠깐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지 모른다"며 "하지만 근거 없는 희망은 실제와 현상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문제 앞에서 막막해질수록 우리는 맑은 눈으로 냉철하게 현실을 보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놀라운 지성의 소유자인 저자가 과학지식과 철학을 총동원해 온갖 사례를 종횡무진 누빈 이유도 올바른 시선으로 인간과 삶을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복잡한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에 중심 없이 휘둘리지 않고, 지혜로운 행복에 이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352쪽, 1만5000원, 스윙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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