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폭설, 6시간 기내 갇혀...식권 한장 받고 '노숙중'

기사등록 2016/01/24 13:50:33 최종수정 2016/12/28 16:30:34
【제주=뉴시스】조명규 기자 = 24일 아침 제주공항 내 한 항공사의 발권데스크 앞에서 많은 체류객들이 비행기 재운항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제주공항은 제설작업으로 인해 정오까지 활주로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2016.1.24  mkcho@newsis.com
【제주=뉴시스】조명규 기자 = 23일 제주공항은 32년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대부분의  항공이 결항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5000여명의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부 항공사들의 미숙한 대처가 논란이 되고 있다.

23일, 일부 항공사들은 이륙준비를 마치고 승객을 태운 채 활주로 구석에서 무려 6시간이나 대기했다. 이유는 날개에 묻은 얼음조각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제거시간 15분소요”라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있었고 현재 8번째 대기상태라고 말해 승객들은 대수롭지 않게 기다렸다. 하지만 2~3시간을 훌쩍 넘어 6시간을 넘기자 승객들의 고성과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져 기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시 제주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탑승한 김모(32·서울)씨는 "새벽부터 내리는 눈발이 심상치 않아서 서둘러 비행시간을 앞 당겨 탔는데, 그 사이 날씨는 더 악화돼 '한파주의보'에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졌다."며 답답해했다. 

그리고는 6시간 내내 이륙을 준비한다며 안내하던 기장은 사라지고 부기장이 안내를 대신 이어갔다. "승객여러분 죄송합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해 비행기는 다시 주기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기저기 승객들의 불만 섞인 탄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내 여기저기서 승객들은 "지금 6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묶어 놓고 이제 와서…" "지금 장난합니까?" "아니 기장이 그거 하나를 판단 못해서 6시간을 대기를 시켰나?" "15분이면 간다며?" "세차만 하면 이륙한다며?"라며 긴 시간만큼 원망도 높았다.

【제주=뉴시스】조명규 기자 = 23일 오후 제주산간 지역에 대설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제주공항에서 공항 관계자들이 비행기 날개에 붙어 있는 눈과 얼음을 제거하고 있다. 2016.01.23  mkcho@newsis.com
이 와중에 승무원들은 승객들 사이를 다니며 "죄송합니다. 지금 이곳 활주로가 얼어붙어 이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지금 다시 주기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연신 사과를 하고 돌아다녔다.

이때 한 승객이 승무원에게 이후 비상 매뉴얼에 대한 계획을 묻자 "일단 주기장으로 돌아가면 하기(하차)를 하실지 아니면 (운항이)해지될 지 기장님이 아직 정보를 주지 않으셔서…원하시면 하기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비상시 대처 매뉴얼은 없는 것과 같았다. 결국 6시간동안 기내에 갇혔다가 항공사측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말은 고작 "원하시면 내리실 수 있습니다."와 내릴 때 주는 (당일 사용불가한)식권 한 장이 전부였다. 

승객 김씨는 "(기장과 승무원들은)15분만, 15분만 하더니 6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비행기 안에만 있었다"며 "비행기 세척을 위해 3~4시간 동안 기다렸더니 결국 날개 쪽에 물을 뿌리는 형식적인 세척이 전부였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객 A씨는 "이건 엄연히 비상사태이고 천재지변인데 왜 매뉴얼이 없고 그에 대한 설명이 없는지가 무척 의문이다"며 "더 한 사고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항공기에 이런 사소로운 상황에도 콘트롤 타워 하나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나?…국내선이어서 그런겁니까?"라며 격하게 지적했다.

또 다른 승객 B씨는 "기상상황을 똑바로 설명하고 승객들의 선택에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안전을 위한다며 마냥 기다리라는 항공사에 미온적인 태도가 승객들의 분노를 커지게 했다"고 비난했다.

【제주=뉴시스】조명규 기자 = 23일 오후 제주산간 지역에 대설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제주공항에서 비행이 취소된 승객들이 기내에서 하차하고 있다. 2016.01.23    mkcho@newsis.com
승객을 대하는 승무원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비행지연에 대한 문의와 항의가 빗발 쳤지만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에 승객들은 더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신경이 예민해진 일부 승객들은 다소 높은 억양으로 승무원들에게 따지며 책임을 묻기도 했다.

이에 한 승무원은 "우리도 빠른 결정이 내려지길 기다리고 있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대기할 수밖에 없어 승객분들에게 이렇다 할 설명도 못하고 있습니다."며 "자연재해 시 그에 대한 (기내 안에서)대책을 강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며 아쉬워했다.

제주공항의 한 관계자는 "승객들이 밤새도록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 비행기가 뜰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지금도 활주로에 눈이 계속 쌓이고 있다. 눈이 그친다 하더라도 비행기 한대 운행 준비만 7시간이 넘게 걸리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제주에 대설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내리는 등 기상이 나빠지면서 내일인 25일 아침 9시까지 557편의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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