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벼랑에 서다②] 국민은 없는 그들만의 계파 정치

기사등록 2016/01/04 05:00:00 최종수정 2016/12/28 16:24:32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계파 정치, 순기능 극대화 위한 정치 풍토 조성 시급

【서울=뉴시스】이현주 김태규 기자 = 국내 정치사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해온 것은 이른바 '계파정치'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이해를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하는 계파는 우리 정치에서 정당을 이끄는 중심이 돼 왔다.

 계파는 무엇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높이 평가받기도 했으나 당내 민주주의 발전 봉쇄, 정치 라이벌간 과열 경쟁과 지역감정 조장 등으로 정치문화의 성장을 저해한 요인으로 비판받고 있기도 하다.

 계파정치의 상징은 지난해 11월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3김(三金)'이다.

 하지만 요즘 정치권에 자리잡고 있는 계파문화는 당시와 많은 차이를 갖고 있다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즉 요즘 정치인들은 대개 당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개인적인 정치적 욕심과 영달을 주된 목적으로 계파를 조성, 활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3김시대 계파는 야당이 권위주의 정권과 대결하는 와중 동지적 관계, 신뢰 등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형성된 것"이라며 "지금은 사실 필요성이 없어진 상황인데 정치인들의 안정적인 입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평가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친박계와 친이계의 전쟁

 3김시대 이후 여당 내 계파 정치를 이끄는 두 축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가 양대 산맥을 이뤘다.

 정치권에서는 친이계를 일종의 오너와 CEO(최고경영자)의 계약 관계라고 본다. 이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올리기 위해 모였던 그룹으로 실제 이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에는 실질적 의미가 없다는 평가다.

 반면 친박계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의리'가 강한 그룹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중심에 있다.  

 친박계는 이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한나라당 시절부터 대통령 및 친이계와 대립각을 세웠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박근혜 캠프 좌장을 지낸 당시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 전 의원 등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으며 이에 분노한 박근혜 의원은 "무원칙 공천에 대해 대표와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지원 유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낙천한 친박 의원들은 집단 탈당했으며 현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당시 '친박연대'라는 정당을 만들고 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한나라당에 남았지만 "살아서 돌아오라"며 탈당파들을 간접적으로 응원했으며 박 의원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친박연대는 지역구 6석, 비례대표 8석 등 총 14석을 얻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친박연대 리더였던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금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서 당을 이끌고 있다.

 현재 '절대 1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는 확실한 수직관계를 보이고 있지만 명확한 2인자는 없는, '점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갑윤 국회부의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윤상현 및 김재원 전 정무특보, 서청원 최고위원 등 박 대통령의 복심을 전달하는 이들은 많지만 '책임자'라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모호하다.

 ◇계파갈등 '민낯'…분당 기로에 선 野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은 계파 갈등으로 분당 사태를 맞았다. 주류와 비주류, 친노(親盧)와 비노(非盧), 친 문재인과 반문재인 등 계파간 싸움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충돌이 분당 위기의 도화선이 됐지만 그 이면에는 해묵은 계파갈등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이다.

 안 의원이 탈당의 신호탄을 쏴 올리자 끊임없이 '문재인 대표체제로는 안된다'고 목 소리를 냈던 비주류 진영이 '신당 깃발'을 들어올린 안 의원 밑으로 모여들고 있다. 문병호·황주홍·유성엽·김동철·임내현 의원이 '안철수 신당'에 합류했다.

 비주류의 핵심인물인 김한길 의원도 탈당, 안 의원과 손을 잡을 태세다. 그는 지난 2007년 20여명을 이끌고 열린우리당을 선도 탈당한 전력이 있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야당의 계파는 더욱 세분화 됐다.  

 친노계 이외에도 친 정동영계(DY계)·친 김근태계(GT계)·동교동계로 나뉘었다. 다시  친노는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와 정세균 전 대표 중심의 범친노가 돼 주류를  형성했다. 친노의 대척점에는 동교동계와 김한길계 등 비주류 진영이 맞서게 됐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YS·DJ 때의 계파정치와 지금 여야 계파정치는 성질이 다르 다. 과거에는 정치적 신념의 문제와, 집단 이익의 공유를 위해 맹주를 중심으로 의기 투합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야당의 계파는 보스가 없다. 수평적 이합집산 속 느슨한  연대 수준의 계파정치를 보이고 있다"고 과거와 현재 계파정치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렇게 세분화된 현대 계파정치의 근원에는 공천권이라는 '밥그릇 싸움'이 깔려있다 는 지적이 많다. 친노·비노가 서로에 대한 깊은 불신 아래 공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2012년 총선 당시 한명숙 대표체제 아래 친노가 공천권을 휘두 른 뒤부터 친노와 비노 사이에 불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계파, 순기능으로 이끌 정치환경 중요

 정치 전문가들은 정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계파를 무조건 없애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것 또한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선진 서구 정치에서도 계파 정치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계파정치의 순기능을 최대한 끌어내는냐가 관건이고, 이를 위한 정치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계파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계파자체를 양성화 시켜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대안이 필요하다"며 "국민 앞에 계파 간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감시와 검증을 받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당 대표를 중심으로 해서 당권과 공천권 등 주류가 독식하는 문화가 조성 돼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계파정치가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당대표 체제를 과감하게 없애 중앙당을 슬림화 시키는 등 정치개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현재 정치권에는 예측 불가능성이 너무 높다"며 "정치에 대한 자원이 한쪽으로 쏠리면 계파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계파에 치우친 인사 편중 독식 현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nyk900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