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기자 아닌 관객이 더 많으니,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기사등록 2015/11/15 07:02:00 최종수정 2016/12/28 15:54:46
【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 연예매체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이 때문에 박보영과 정재영이 주연한 이 영화에 대한 현직 연예기자들의 관심은 남달랐다. 나아가 제목부터 ‘열정페이’를 비판하는 듯하니 특정 직업군 이야기이지만 사회 초년생의 직장문제로 확장될 수도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예고편 공개 당시 개그맨 박명수를 능가하는 배우 정재영의 호통연기는 폭소를 유발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출근은 있어도 퇴근은 없다’ ‘니 생각, 니 주장, 니 느낌 다 필요없어!’라는 카피도 절절히 와 닿았다. 영화에 ‘2015 공감 코미디’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일 것이다.

 12일 공개된 이 영화에 대한 연예기자들의 반응은 그러나 썩 좋지 만은 않다. 너무 업계를 잘 알아서일까, 검찰이나 형사들도 그동안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괴리감을 느꼈을까. 정말 잘 만든 사극이 아니면 고증이 눈에 밟혀 사극을 볼 수 없다는 어느 사학자가 떠오른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직장드라마 ‘미생’의 저력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흥행에마저 먹구름이 끼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은 좀 더 재미있게 보는 것 같아서다. 아마도 사랑스런 박보영과 맞춤옷을 입은 정재영의 공이 큰 것 같다.

 사회초년병 도라희(박보영)는 명문대 신문방송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나 취업에 족족 실패하고 풍전등화의 스포츠신문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설상가상으로 편집국 연예부의 부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처럼 입만 열면 험한 욕을 쏟아놓는다.

 모든 게 낯설어 허둥거리는 도라희는 요즘 세대답게 궁금하고 납득 안 되는 것은 계속 물어본다. 상사 입장에서는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똘아이’로 비친다. 하재관(정재영)은 이런 그녀를 사정없이 혼내면서 취재현장으로 뺑뺑이 돌린다.

 영화 속 언론사에는 1990년대까지 위력을 뽐낸,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포털사이트와도 같은 스포츠지의 직장문화가 녹아들어 있다. 연예미디어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온 현재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매니지먼트사와 언론사의 역학관계에도 다소 괴리가 있다. 매니지먼트 운영방식도 마찬가지다. 하재관 부장도 요즘 연예기자들이 보기에는 현실감이 좀 떨어진다. 한 마디로 구시대 스타일이다.

 하 부장은 성질은 더럽지만 인간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자신과 후배들의 밥벌이를 위해 오보인줄 알면서도 기사를 쓰고(실제로 데스크가 직접 기사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기는 하다) 매니지먼트사의 접대를 받지만 뇌물까지는 안 받는,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는 기자로 그려진다. 

 영화는 1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 인턴기자들의 험난한 직장생활기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야단맞던 도라희는 어느 순간 선배기자들보다 더 활약한다. 우연한 기회에 톱스타와 매니저 간의 갈등을 단독 취재하게 된 그녀는 이를 둘러싼 사건과 엮이면서 초보 기자의 티를 벗고 조금씩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도라희가 매니지먼트사의 철통보안을 뚫고 톱스타의 입원실로 잠입해 특종을 하게 된다든지,
큰 사건을 선임이 아닌 막내가 취재하게 된다든지, 부장이 매니지먼트사가 의도적으로 던져준 단독기사를 오보인줄 알면서도 기사로 냈는데 같은 회사의 막내기자가 그걸 뒤엎는 기사를 쓴다든지 등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자회견 분위기, 톱스타의 교통사고 등 모든 상황이 조금은 극적으로 과장돼 있다. 

 ‘열정같은소리하고 있네’라고 도발적인 제목을 붙였지만, 막상 도라희는 열정을 갖고 모든 부당한 노동현실을 받아들인 채 그 속에서 제몫 이상을 해낸다. 그 모습이 장하기도 하면서 극 초반 드러낸 현실비판이 그저 푸념으로 그치고 만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열정페이’에 시달리는 20대 청춘의 문제로 확장되지 못한 것이다.

 회사에 만연한 성희롱 행태를 보여주려는 에피소드도 되새길수록 거북하다. 도라희와 입사동기인 여자 인턴이 부장 험담을 하면서 “자살한 연예인을 두고 그렇게 죽을 거면 한 번 주고 죽지라고 말했어”라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짓는다. 상사가 실제로 신체접촉을 시도했다는 고발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걸 그저 보여주기만 한다. 성희롱적 발언이 나와도 분위기가 악화되지 않도록 잘 넘기는 게 여자직원들이 익혀야하는 처세술이라는 정도만 알려준다.

 연예계를 무대로 했음에도 잔재미가 없다는 아쉬움도 있다. 도라희는 ‘김우빈’을 인터뷰하고 싶어하나 실제로 김우빈이 카메오 출연하는 잔재미는 없는 식이다.

 주된 사건은 톱스타의 약점을 잡고 부당 계약한 매니지먼트사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다. “극중 대표와 톱스타 관계를 한 번도 직접 겪어본 적은 없어서 살짝 멀게 느껴지기는 했다”는 박보영의 조심스런 언급처럼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좀 옛날방식이다.

 언론사나 연예업계 모두에 요즘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한 게 이 영화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물론 옛 방식의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라희는 원고가 수십 번 찢김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부장의 데스킹으로 기사가 난자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속도’와 ‘양’이 생명이나 다름없는 온라인 시대에 부장이 기사를 뜯어고칠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써서 밀어내기 에도 바쁜 매체들이 많다. “공통점은 국문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글을 소리나는대로 쓴다. 오타, 탈자, 실수가 아니다. 교정, 교열해야 할 의무가 있는 좀 더 늙은 기자도 대개 도긴 개긴이다. 따라서 학령기 아동과 청소년은 낱말과 문장보다는 대강의 의미만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낭패가 없다”는 어느 언론인의 자조는, 상당부분 사실이다.

 정재영과 박보영의 호흡이 좋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jashi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