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가을 낙엽을 밟으며 전시장을 들락날락해보면 어떨까. 갤러리 전시는 모두 공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4000원만 내면 모든 전시를 다 볼수 있다.
삼청동길에 나서면 꼭 볼만한 전시를 소개한다.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 수묵화의 변화를 볼수 있는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도대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새로움을 위해 화가들이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세옥'전
이젠 아들 서도호 작가가 더 유명세를 타지만 '서세옥' 이름 석자는 한국화단의 바위같은 존재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 '한국 수묵추상의 거장 산정(山丁) 서세옥'전은 그가 기증한 작품을 선보이는 특별전이다. 서세옥(86) 화백은 지난해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기별 자신의 대표작 100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10여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 '도룡(屠龍)'도 상영해 그의 예술관과 작품세계를 알아볼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6일까지. 02-3701-9500
◆학고재 '당대수묵'전
한·중 수묵 대표작가 5명의 작품이 소개됐다. 한국의 김선두, 김호득, 조환과 중국의 웨이칭지, 장위가 참여해 한중 '수묵 배틀'같은 전시이기도 하다. 전통수묵에서 출발했지만 재료와 방법 혹은 주제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이미지를 설치 회화 조각으로 확장하며 작품세계를 넓혀온 작가들이다.
수묵작가들이지만 한중 작가들의 차이점이 확연하다. 한국은 재료, 방법과 씨름하는 반면 중국작가들은 서양, 자본과 대결하고 있다.
웨이칭지의 스승이기도 한 장위는 검지로 찍어 만든 '지인 시리즈'를 선보인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 작가로도 참여해 인지도가 있는 이 작가는 지문을 찍는 행위이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입히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특히 붓을 버리고 손가락을 택한 건, 서양예술에 대한 반발이다. 유화와 수묵화와 부딪히지 않고 다름에 몰두하며 찾은게 손가락이다.
반면 한국작가들은 먹과 붓을 고수하며 진득하게 수묵화의 정신을 잇고 있다. 3인 중 조환은 먹을 과감히 버렸다. 서예가로도 명성이 있는 그는 녹슨 철판에 '반야심경'을 써냈다. 페인트로 그려 용접기로 떼낸 초서는 한지에 쓴 붓글씨보다 더 유려하고 능숙해보인다. 그 앞에는 녹슨 배도 함께 설치했다. 피안의 세계로 가는 배다. 조환은 "붓을 버리니 자유로워졌다"면서 "먹의 맹신에서 벗어나 떨어져 보니 고정불변은 없더라"며 가벼운 모습을 보였다.
김호득은 고집스럽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먹과 붓과 더 씨름한다. "먹 안에서 정신과 물질을 다 표현할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젠 먹이 정신으로 물질적으로 결합하는 실험을 하며 먹만 가지고도 신선하고 현대적 감각을 표현해내는게 화두다. 40년째 '먹 맛'을 살리고 있는 그의 작품은 먹과 붓이 부딪히며 기운생동을 전한다. 11월29일까지. 02-720-1524
◆국제갤러리 '권영우'전
한지를 통해 실험적인 방식으로 추상화를 선보이는 권영우 화백의 작품 30여점이 전시됐다. 1980년대에 제작된 채색 작업들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그리는 행위를 배제하는 대신 종이를 자르고, 찢고, 뚫고, 붙이는 등 신체성이 강조된 작업이다. 평평한 표면 위에 종이가 여러 겹으로 붙여있다.
한국 현대회화를 개척한 단색화 작가로 분류되어 있는 작가는 먹을 중요하게 다룸으로써 한국적 전통회화의 추상적 표현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0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작가는 2013년 서울에서 작고했다. 전시는 12월6일까지.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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