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이성열 연출 "세대간 화해·이해 치중"

기사등록 2015/08/19 10:55:51 최종수정 2016/12/28 15:28:38
【서울=뉴시스】이영환 인턴기자 = 연출가 이성열이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연극 '아버지와 아들' 기자간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연극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 3대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 원작으로 오는 9월 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2015.08.18.  20hwan@newsis.com
"프리엘, 체홉의 일상을 받아들여"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국립극단(예술감독)이 가을마당 첫 작품으로 이성열 연출(극단 백수광부 대표)의 연극 '아버지와 아들'을 선보인다.

 러시아 3대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 원작의 국내 초연 무대다. 19세기 러시아 사회가 겪고 있던 세대간의 갈등과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소설 '아버지와 아들'은 '아일랜드의 체홉'으로 이름난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의 손끝에서 희곡으로 재탄생했다.

 소설 속 투르게네프의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은 프리엘의 서정적 감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프리엘은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갈등'이라는 원작의 주제를 지키면서도 불안한 일상 속 인물 간의 엇갈리는 사랑이야기를 극대화했다.

 이성열 연출은 18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열린 '아버지와 아들' 기자간담회에서 "프리엘이 러시아의 격변하는 정치사 대신에 보편적인 주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아버지와 아들'은 1862년 발표됐는데 당시인 19세기 러시아는 농노제와 전제정치 폐지에 대한 요구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특히 소설 속 배경인 1859년은 농노 해방을 앞두고 세대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 연출은 "원작에서는 러시아의 격변하는 정치 시대에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견해차를 자세히 다룬 반면, 프리엘이 쓴 작품에는 그런 면이 상대적으로 축소됐다"고 전했다.  

 "제목이 '아버지와 아들'인 것처럼 세대 간의 갈등과 그들 사이의 화해와 이해로 더 많이 치중해서 쓰여졌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리엘이 아일랜드의 체홉이라고 불리고 있어서 그런지 체홉식으로 옮겨진 부분이 많습니다. 프리엘이 원작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체홉 쪽으로 많이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 연출은 자신의 연출 방향도 그 큰 틀에 맞춰 가고 있다고 했다. 1998년 '굿모닝? 체홉'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체홉의 현대적인 재해석에 일가견을 보여왔다.

【서울=뉴시스】이영환 인턴기자 =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연극 '아버지와 아들' 기자간담회에서 연출가 이성열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극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 3대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 원작으로 오는 9월 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2015.08.18.  20hwan@newsis.com
 체홉이 소극에서 출발한 점을 짚은 이 연출은 "체홉은 본격적으로 쓴 장막극에서는 대놓고 웃기지 않습니다. 보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체홉의 흐름"이라며 "프리엘 작품에서도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웃음 코드보다는 일상이라는 말로 더 많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프리엘이 체홉적인 일상을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또 프리엘은 원작에서 나오는 결투 장면과 바자로프의 죽음을 생략했습니다. 극적인 장면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일상의 반응들을 가지고 극을 구성한 것이 원작과 다른 부분입니다. "

 체홉과 프리엘이 다른 지점은 사랑을 다루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체홉에 나오는 사랑은 엇갈리는 사랑입니다. '갈매기'나 '벚꽃동산'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체홉의 사랑들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벚꽃동산'에서 남을 흠모한다고 청혼을 하거나 납치를 하는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작품들을 봐도 엇갈리더라도 불륜이나 근친과 같은 모순된 위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에는 위험한 모습이 많다고 지적했다. "극 중에서 빠벨은 귀족주의자인데 제수씨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하녀여서 빠벨이 기존에 말하던 귀족주의와 맞지 않습니다. 바자로프는 혁명가인데 귀족적인 안나를 사랑합니다. 모순되는 사랑이지요. 여기 나오는 사랑은 체홉에 나오는 사랑보다는 격렬하고 모순되고 위험합니다. 원작 소설도 그렇지만 프리엘은 여기서 더 심화시켰습니다. 체홉 작품보다 좀 더 치열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연출은 하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갈등과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고 했다. "모녀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은 많습니다. '친정엄마'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다룬 작품 중에서 서로 화해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살부의식이 역사적으로 많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자신의 뜻과는 달리 신흥 자본가 안나와 사랑에 빠지는 '바자로프'가 죽음으로서 모든 화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가장 특기했다. "혁명적인 지식인의 죽음은 자기희생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험한 전염병이 창궐하는 사지로 들어가서 예측된 죽음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화해와 용서가 이뤄진다는 것이 이 작품의 힘이자 다른 작품이 이루지 못한 특징입니다."

 9월 2~25일 명동예술극장. 남명렬, 오영수, 유연수, 김호정, 윤정섭, 이명행. 무대디자인 이태섭. 러닝타임 170분(휴식 15분 포함).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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