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이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르기 시작하자 가장 성대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벳의 고뇌가 느껴졌다.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와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세밀하게 감정 표현을 하는 그녀의 연기로 엘리자벳이 "난 자유를 원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노래하는 순간은 공감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조정은의 방점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했던 귀족 처녀 씨씨는 시어머니에게 인형처럼 조정되는 남편, 왕궁의 엄하고 철저한 규율에 답담함을 느낀다. 자신이 낳은 아이의 양육마저 시어머니에게 빼앗기자 그녀는 삶의 기쁨을 잃고 우유 목욕 등 외적인 치장에만 몰두하다. 풍요 속 빈곤.
조정은은 그간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총망라하며 생명력이 펄떡거리던 때부터 황후로서 부담감, 두려움, 허무 그리고 자식을 잃은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아우른다.
호기심이 많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던 처녀의 모습은 괴팍한 야수의 따뜻한 영혼을 발견하는 순수하고 밝은 소녀 '벨'(뮤지컬 '미녀와 야수')이고, 언니 헬레네 대신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눈에 든 순간은 순수하고 감성적인 청년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마력의 여인 '롯데'(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며 자식에 대한 애달픈 애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딸 '코제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판틴'(뮤지컬 '레 미제라블')이다.
깨끗한 이미지 위에 다채로운 색깔을 칠해왔던 조정은의 뮤지컬 경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할 만하다.
씨씨는 어릴 적 외줄타기를 하다 그 위에서 떨어지면서 '죽음'과 처음 만난다. 말 그대로 죽음이 의인화된 이 캐릭터의 매력은 관능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외줄을 탈 때 느껴지는 오묘한 감정선을 유혹으로 승화시키는데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이 작품으로 이번에 뮤지컬배우로 데뷔한 가수 세븐은 단번에 합격점을 주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JYJ' 김준수, 가수 박효신 등 전 시즌에서 죽음을 연기했던 배우들의 보컬과 개성이 워낙 강력해서 초반부터 손해보는 것이 있고, 아직 초반이라 큰 특징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홀로 떨어져 가요식 창법을 선보이는 것도 좀 튄다.
그렇다고 크게 흠을 잡을 만하지는 않다. 고음에서 파괴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보통 음에서의 목소리가 감미롭고 춤에 일가견이 있는 만큼 몸놀림도 좋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본래 데뷔작에서 호평을 받기 힘든 만큼 다듬어나가면 발전 가능성은 있다.
전 시즌인 2013년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무정부주의자인 '루케니' 역의 이지훈은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간 '라카지' '프리실라'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실력을 다져온 것이 쌓였다. 넉살이 늘어 극을 이끌어가는 것에 탄력이 붙었고 고음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올리는 등 가창도 좀 더 뮤지컬배우답게 변했다.
◇총평
이번이 세 번째 시즌으로 이전 시즌에 90%를 훌쩍 넘는 객석 점유율을 기록한 EMK뮤지컬컴퍼니의 인기 레퍼토리다. 김준수, 류정한, 박효신 등 스타 남자 뮤지컬배우들이 출연한 탓도 있었지만 이번의 조정은을 비롯해 옥주현, 김선영, 김소현 등 걸출한 여자 뮤지컬배우들이 엘리자벳을 호연한 몫도 크다.
특히 엘리자벳이 마지막에 정신병원에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를 지켜보며 "너는 몸이 묶여 있지만 영혼은 자유롭고 나는 몸은 자유롭지만 영혼이 묶여 있구나"라고 안타까워할 때의 여운은 짙다. 그저 그 무대 위에는 자유롭게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어한 여자, 아니 사람이 있었다.
무대 중에서는 엘리자벳의 길고 힘겨운 여정을 은유하는 듯한 턴테이블 사용이 효과적이다. 계속 돌고 도는 이 회전무대는 '삶이 끊임없는 수레바퀴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듯하다.
9월6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엘리자벳 옥주현·조정은, 죽음 신성록·세븐·전동석. 170분(인터미션 20분 포함). 6만~14만원. EMK뮤지컬컴퍼니. 1577-6478.
조정은의 방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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