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30년 '소울 브라더'인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1942-2014)가 한 말이다.
미즈마루는 하루키가 ‘이 세상에서 내가 마음을 허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고백한 일본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소설가 그리고 번역가다.
두 사람은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고 사이도 무척 좋았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본명은 와타나베 노보루였는데,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 숲’의 주인공 이름이 바로 와타나베였다.
둘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해 뜨는 나라의 공장’ ‘무라카미 아사히도’등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무라카미 하루미 글’ 콤비로 활약하며 다수의 책을 냈다.
작가 임경선은 “하루키의 짱짱하고 리듬감 있는 문체에 미즈마루의 능청스럽고 탈력감(脫力感) 넘치는, 수리술술 그린 듯한 그림은 절묘하게 어울려서 보는 이를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미즈마루는 풍류를 알았던 작가로 다가온다. 실제로 그는 죽기 전까지 쉼 없이 일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으나 해가 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놀러 갔다. 평생 술도 많이 마셨고, 하루키의 증언에 따르면 여성에게 인기도 많았다.
그는 또 절대 옷을 다려 입지 않았다. 낡은 옷을 좋아해 트렌치코트를 사면 입은 채로 샤워를 해서 일부러 쭈글쭈글하게 만들었다.
그림은 ‘대충’ 그렸다. 의뢰 전화를 받으며 그린 그림을 전화를 끊고 바로 팩스로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미즈마루는 이런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답니다. 저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지 않으려나요.”
“저는 반쯤 놀이 기분으로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더군요. 진지함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일본에서는 흔치 않은 스타일이죠. 아침에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고 불단에 기도를 한 뒤 작업에 들어가는 도예가가 있는가 하면 저는 작업 선반을 걷어차며 일을 하는 편이라고 할까요.”
이 책은 단행본 삽화, 잡지 표지, 만화, 그림 에세이 등 미즈마루의 초창기 작업부터 최고의 인기작까지 총망라했다. 작업 당시 에피소드나 하루키와의 대담 등을 실어 볼거리뿐만 아니라 읽을거리도 풍성하다.
미즈마루는 니혼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광고회사 덴쓰, 뉴욕의 디자인회사, 출판사 헤이본샤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32세에 잡지 ‘가로’에 만화를 발표하며 만화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다수의 에세이와 소설을 썼다. 말년에는 동료들과 일러스트레이터 학교 팔레트클럽스쿨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다.
2014년 3월10일, 뇌일혈로 쓰러진 지 이틀 만에 7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권난희 옮김, 321쪽, 1만6000원, 씨네21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