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컬 '위키드'와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미국 뮤지컬스타 겸 가수 이디나 멘젤(44)을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 중 두 가지에 불과했다.
멘젤은 30일 오후 3시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펼친 자신의 첫 내한 콘서트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위키드'의 '디파잉 그래비티', '겨울왕국'의 '렛 잇 고', 두 곡에 쏠린 한국 내 이미지를 보란듯이 깼다. 뮤지컬 넘버의 웅장함과 재즈의 고급스러움을 오가는 편성을 들려준 밴드·소규모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잇따라 선보였다.
어느덧 멘젤의 나이는 40대 중반. 뮤지컬 '렌트·'위키드'로 브로드웨이를 호령하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과 달리 가창력이 떨어졌다는 평을 받았다.
'렛잇고'로 '주제가상'을 받았던 지난해 3월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곡을 불렀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라이브로 일부 팬들이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반의 불안함은 기우였다. 멘젤은 공연이 진행될수록 탄력이 붙더니 결국 약 100분의 러닝타임을 오롯이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발라드 '브레이브'는 청초함이 느껴졌고 재즈 풍 '러브 포 세일'은 드라마틱했다.
공연 중에 힐을 벗고 맨발로 무대에 선 멘젤이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록밴드 '라디오 헤드'의 '크립(creep)'을 부르는 순간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무릎을 꿇고 허스키가 밴 단단한 목소리로 '크립'을 부르는 그녀는 애절했고 그 만큼 뜨거웠다.
1996년 초연된 작품이자 자신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인 뮤지컬 '렌트'에서 맡았던 '모린'의 곡 '테이크 미 오어 리브 미(take me or leave me)를 들려줄 때는 다시 20대로 돌아간 듯 흥이 넘쳤다. 플로어석으로 내려가 몇몇 여성 관객에게 이 곡을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여성 관객들은 화려한 가창력을 뽐내며 공연장 내 수은주가 치솟는데 힘을 보탰다.
막판에 '렛 잇 고'를 부를 때는 '깜짝 선물'도 있었다. 후렴 "렛 잇 고. 렛 잇고. 앤드 아윌 라이즈 라이크 더 브레이크 오브 돈.(Let it go, let it go. And I'll rise like the break of dawn.)……."을 "다 잊어. 다 잊어. 이제 다시 일어설거야……"로, 즉 한글 가사로 번역된 한국어 버전으로 부른 것이다. 다소 어눌하지만 열심히 한국어로 "폭풍 몰아쳐도 추위 따위는 두렵지 않네"라고 노래하는 멘젤의 무대 매너는 최고였다.
'겨울왕국'의 인기를 반영하듯 해외 팝스타의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10세 안팎의 어린이 관객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재즈 풍의 곡들이 주를 이룬 공연은 그 보다 20~30대 이상이 더 좋아할 법했는데 '렛 잇 고'가 흘러나오자 어린이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리기도 했다.
오른 손으로 갈색 긴 머리를 쓸어넘기고 연신 활짝 웃으며, 한국 팬들을 새로운 친구라 부르는 멘젤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이날은 게다가 멘젤의 생일. '렛 잇 고'로 본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 곡 '터마로'가 시작되기 전 공연장에 운집한 1000여 팬들이 생일 축하를 부르자 함박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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