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국내에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천 송도국제도시 '트라이볼'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비정형 건축물이 없다. 비정형 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모두가 도심 랜드마크의 탄생을 갈망하지만 초고층 건물 일변도로 흐르는 점을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비정형 건축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로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국내 건축 풍토 탓"이라고 말했다.
◇"수업료는 비쌌지만"…DDP, 초기 여론 '뭇매'에도 1년만에 안착
한 유투브에 떠도는 영상 '먼데이 모닝 뉴스'(www.youtube.com/watch?v=KjB0V9fHCp0). 왠지 낯익은 건축물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바로 지난해 3월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먼데이모닝 스캇 탐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기자는 뉴스를 진행한다. 별다를 것도 없는 리포팅도 잠시, 건축물이 갑자기 번쩍 불빛을 내며 생동한다. 곧이어 DDP는 '날아오른다.' DDP 관계자는 "개인 유투버가 우주선을 닮은 DDP의 독특한 외형에서 착안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영상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DDP를 위한 헌정 영상인 셈.
비정형 건축물을 찾아보기 힘든 게 국내 사정이지만 DDP는 해외에도 소개된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건축물이다. 삼성물산이 지은 이 건축물의 총 면적은 8만6479㎡. 축구장의 3.1배, 미국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1.3배다.
특히 건물 내외부를 타고 쉴새없이 흐르는 유려한 곡선이 독특한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례 없는 건축 형상에 개관 초기, 시민들 사이에서도 뒷말이 많았다. 특히 '불시착한 우주선'을 닮았다며 호불호가 갈렸다.
최근 상황은 조금 다르다. 외국 유투버의 영상이 말해주듯 국내에서도 DDP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늘었다. DDP에 따르면 지난해 방문객수는 680만명으로 당초 예상 500만명을 웃돌았다. 뉴욕타임즈는 올해 초 DDP를 '2015년에 꼭 가봐야 할 명소 52곳'에 선정했다.
특히 마세라티, BMW, 토요타, 현대자동차, 아우디 등 자동차 업계가 DDP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신제품 광고 촬영이나 론칭 행사가 계속해서 열린다. DDP는 도심 내 랜드마크로 안착을 시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아직도 있다. 바로 건축 비용 문제.
당초 DDP의 공사비용은 2274억원으로 책정됐으나 잦은 설계 변경과 계획 수정으로 5000억원까지 두 배 이상 늘었다. "시민들의 혈세가 들어간 공사인데 방만 시공한 게 아니냐"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다만 국내에서 첫 시도된 비정형 건축이라는 점에서 '비싼 수업료를 치른 것'이란 평가도 공존한다.
삼성물산은 DDP를 짓기 위해 두께 4㎜의 알루미늄 외장 패널을 총 4만5133장이나 사용했다. ▲평판 9492㎡(1만3841장) ▲1차 곡면판 7455㎡(9554장) ▲2차 곡면판 1만6281㎡(2만1738장) 등이다.
삼성물산은 건설 초기 외장패널을 제작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실패와 시행착오가 반복됐다. 하지만 1년여만에 결국 2차 곡면패널을 제작하는 성형기계(MPSF)와 레이저 절단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물산은 이 과정에서 비정형 건축 관련 6건의 특허도 확보했다.
설계를 맡은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도 시공 초기 "삼성물산하고는 일 못하겠다"며 국내 건설사의 기술 수준을 폄하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완공 이후 DDP를 보며 "판타스틱"이라며 찬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DDP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새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된 비정형 건축물 시도는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후속작이 없다…설계 전문가 육성도 과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는 현실적인 벽이 많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비용 문제'. 비정형 건축물은 일반적으로 '성냥갑' 건물보다야 당연히 비용이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정형 건축물은 일반적으로 2배 정도의 건축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여 년간 비정형 건축물에 관심을 가져온 건축사무소 위드웍스의 대표 김상진 건축가는 국내에 비정형 건축물의 싹이 움트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번 초고층건물 경쟁도 사실상 현대차그룹과 롯데그룹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불황기에 어느 누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초대형 건축물을 짓겠다고 나설 수가 있을까요. 비정형 건축물도 마찬가집니다. 민간에서는 돈이 없어서 비정형 건축물을 못 짓는거죠."
DDP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돈을 대는 관급공사의 경우도 현실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급공사의 경우 애초에 비정형 건축물에 관심이 없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최저가 입찰 경쟁' 방식으로 시공사를 모집하는 이유도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욕먹을 필요가 있냐는 보수적인 선택입니다. 게다가 비정형 건축물은 공사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설계사-시공사간 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건물 하나 올리는 데 '골치가 아프다'는 얘깁니다."
한마디로 "민간은 돈이 없어 못 짓고 공공은 싸게만 지으려는 풍토 탓"에 비정형 건축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간에서 지으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공공기관에서도 비정형 건축물에 대한 이해가 낮기 때문에 허가 받기가 쉽지 않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랜드마크 건축물을 왜 짓는가'의 문제는 남는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의 사례에서 보듯이 도시에 건축물 하나가 들어서면 단순 스카이라인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도심의 인상이 바뀐다. 랜드마크 시설 주변 상권과 연계, 경제 유발 효과를 배증시키겠다는 기대감에서 짓는다. MICE 산업이 미래 산업으로 각광 받는 상황에서 비정형 건축 수요는 앞으로 점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는 비정형 건축물 전문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건축 전문가보다 '설계 전문가'가 없다.
국내 건설사들의 건축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비정형 건축 경험은 적다.
DDP는 물론이고 세계적 건축가 모쉐 사프디가 설계한 쌍용건설의 샌즈호텔도 외국 비정형 건축 설계사들에 기대는 바가 크다. 비정형 건축에 한해선 유럽 설계자들을 생각하지 않고 공사를 벌일 수 없는 상황인 것.
삼성물산은 DDP 건축을 통해 '자하 하디드의 설계를 최초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디자인 구현과 시공 완성도면에서 늘 논란에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뿐. DDP를 잇는 눈에 띄는 후속 비정형 건축물이 없다.
전문가들은 비정형 건축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정형 건축물에 대해 "상상 위에 그리는 건축"이라고 말했따. 비정형 건축물의 설계는 사실상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상상은 그저 상상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하다.
김 대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비정형 건축 전문가를 육성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비정형 건축물 수요는 계속해서 늘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민간도 공공도 비정형 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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