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신생 구단' 서울 이랜드FC가 전지훈련 중인 경남 남해군 서면의 남해스포츠파크에는 쉴 새 없이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풍으로 인해 체감 온도가 뚝 떨어진 상태였지만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합류를 앞둔 선수들은 굵은 구슬땀을 쏟으며 역사적인 첫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쟁에서 자유로운 포지션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훈련장에서 가장 큰 기합 소리를 내는 3명이 있었다. 서울 이랜드의 '골키퍼 3인방' 김영광(32), 이범수(25), 김현성(22)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축구 선수로서 한 차례씩 큰 시련을 겪었다.
마틴 레니(40) 감독의 부름을 받고 서울 이랜드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린 김영광, 이범수, 김현성은 그라운드를 향한 간절함이 남다르다. 서울 이랜드의 골키퍼 경쟁이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영광은 축구스타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아픔은 있다.
지난 2013년 명문 울산현대에서 뛰던 김영광은 종아리 부상을 당한 뒤 후배 김승규(25·울산)에게 부동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줬다.
이듬해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경남FC로 임대 이적한 그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끝내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원소속팀 울산으로 복귀한 김영광은 새 시즌을 앞두고 결단을 내렸다.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원했고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일본 J리그 및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상위권 팀들의 이적 제의를 마다하고 서울 이랜드에 둥지를 텄다.
김영광은 "청소년부터 성인대표팀까지 차례로 거쳤다. 경력으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부상으로 대표팀과 소속팀 주전 경쟁에서 모두 멀어졌고 차츰 그런 상황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처음에는 힘도 들었지만 낮은 곳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을 다 내려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는 구단의 제의도 있었지만 새출발은 서울 이랜드에서 하고 싶었다"며 "구단의 비전, 레니 감독님의 축구 철학 그리고 팬 친화적인 문화 등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신생팀에서 기초를 새로 쌓고 싶었다. 이 팀에서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다면 예전처럼 쉽게 내려가지 않고 잘 지킬 수 있을 것만 같은 믿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최고참이지만 배우려는 자세만큼은 후배들 못지 않다. 그만큼 치열하게 주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영광은 "프로라면 늘 경쟁을 해야 한다. 그 경쟁에서 승리해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며 "주전이 됐다고 해도 그 단계에서 만족을 하면 안 된다. 마음을 놓는 순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잃게 된다. 언제나 경기장에 나설 수 있도록 관리를 잘 하는 것이 프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경험은 내가 훨씬 많지만 후배들은 뛰어난 신체 조건을 지니고 있다. 각자의 장점을 살리며 최선을 다해 경쟁하고 있다"며 "내 목표는 역시 주전으로 뛰는 것이다. 후배들과 함께 성장하며 창단 첫 시즌 팀에 챌린지 우승컵과 1부 리그 승격을 선물하고 싶다. 서울 이랜드의 역사를 내 손으로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범수는 이범영(26·부산)의 동생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학창 시절 그는 실력으로 더 이름을 떨쳤다.
190㎝, 84㎏의 탁월한 신체조건을 지닌 이범수는 15세~17세 이하 청소년대표를 지냈다. 2010년 경희대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전북현대 유니폼을 입으며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했다.
최은성(44·은퇴), 권순태(31)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이범수는 전북에 머물렀던 5시즌 동안 정규리그 단 4경기 출전(챔피언스리그 포함)에 그쳤다. 2012시즌부터는 단 한 차례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범수는 "전북에 있던 5년 동안 4경기에 출전해 12실점했다. 경기당 실점이 무려 3점이었다"며 "출전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경기력과 자신감이 모두 떨어졌다. 수비진을 진두지휘해야 할 골키퍼가 흔들리니 실수도 더 많아졌다"고 아팠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프로 6년차가 됐지만 이범수에게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는 "20세에 데뷔했는데 어느덧 26세가 됐다. 내가 꿈꿨던 그림은 이것이 아닌데 많은 부분이 어긋났다"며 "형 그리고 동료들이 프로나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운 마음을 갖기도 했다. 나도 이제는 축구 선수로서 제대로 된 경력을 쌓고 싶다"고 전했다.
또 "(김)영광이형은 명성대로 대단한 골키퍼다. 30대인데도 순발력이나 의욕이 후배들보다 뛰어나다. (김)현성이는 가진 것이 많은 선수다. 기초가 갖춰져 있고 몸도 유연하다"며 "내게도 장점은 있다. 일단 신장이 크고 양발을 다 사용할 수 있다. 빌드업 과정에서 골키퍼를 이용하려는 레니 감독님의 전술과 잘 맞는다. 과거 시행착오가 있었던 만큼 이 팀에서 주전으로 뛰겠다는 내 각오는 남다르다. 지금까지의 설움을 떨쳐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뒀던 한계를 깨고 찾아오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김현성은 두 번째 축구 인생을 살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68㎝였던 그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골키퍼를 시작했다. 이후 될 성 부를 떡잎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광명고 졸업 후 빠르게 기회가 찾아오는 듯 했다. 미국프로축구(MLS) 진출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깃든 제안에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결과는 참담했다. 5개월 가까이 현지 모텔에 머물며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하던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받은 충격과 허탈감에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김현성은 "약 5개월간 미국에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못했다. 축구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을 해도 좋았는데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오니 상실감이 컸다"며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축구를 그만둘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한 번 더 도전해보자는 아버지의 설득에 인천유나이티드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당시 인천 골키퍼 코치였던 김현태 팀장님으로부터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 한 마디를 계기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1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현성은 남들보다 더 노력했다. 광주대에 입학한 그는 전국체전 등에서 맹활약했고 레니 감독과 서울 이랜드 전력 분석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먼 길을 돌아 프로팀에 입단한 김현성은 "어려서부터 존경해온 (김)영광이형과 함께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며 "대학 때와는 모든 것들이 다르다. 훈련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새롭고 재미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막내이지만 가슴 속에 품은 목표는 형들과 다르지 않다. 김현성도 골문의 주인을 노리고 있다.
그는 "영광이형이나 (이)범수형은 프로에 오래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경력도 경험도 부족하다.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하고 있다"며 "그러나 주전에 대한 욕심은 항상 가지고 있다. 시즌은 길고 내게도 기회는 꼭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나 역시 충분히 주전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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