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엘리베이터가 빨리 왔다."(24쪽) "별 생각 없이 벤치에 손가락으로 낙서를 했는데 주욱 긁혔다."(31쪽) "도면을 들여다보고, 현장을 다니고, 회의를 하는 도중에 재욱의 시야는 자꾸 붉어졌다."(36쪽)
엘리베이터를 조종하거나, 손톱이 빨리 자라거나, 설계와 실제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는 식이다. 이들은 이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누구를, 어떻게 구하라는 설명도 없다.
"'이 영화가 재미없는 건 맞는데,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아직도 세계의 극히 일부인 것 같아. 히어로까지는 아니라도 구조자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재욱이 말했을 때 재인과 재훈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각자 자기가 구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게다가 어쩌면 구해지는 쪽은 구조자 쪽인지도 몰라.'(164쪽)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은 '이만큼 가까이' 등을 통해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아울러 온 정세랑이 썼다. 두 명의 친구와 친동생에게서 이름을 빌린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출판사 은행나무가 펴내는 원고지 300~400장 분량의 중편소설 시리즈 '은행나무 노벨라'의 다섯 번째 책이다. 172쪽, 8000원,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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