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달라졌다①]1년 새 무슨 일이 있었기에…주가 고공 행진

기사등록 2014/10/20 14:56:07 최종수정 2016/12/28 13:32:32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지난 13일 한국전력(사장 조환익)은 전 거래일 대비 750원(1.54%) 상승한 4만9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로써 한전은 이날 종가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약 31조7000억원이 돼 전날 3위였던 SK하이닉스(약 30조2000억원)를 약 1조5000억원 차이로 밀어내고 코스피 시장 시총 3위에 올랐다. 특히 이날 한전은 장 중 한 때 5만200원까지 치솟으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1999년 7월 이후 15년 만의 5만원 돌파이기도 했다.

 같은 날 신영증권은 한전의 3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컨센서스(2조7040억원)를 16.0% 상회하는 3조1364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대비 102.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영증권은 한전의 목표주가를 기존 5만3000원에서 5만9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 증권사 황창석 연구원은 “3~4분기 큰 폭의 실적 호전 전망과 배당 수익률 기대감에 힘입어 한전의 주가 방향성은 상승에 무게를 둔다”고 짚었다.

 국내 최대 공기업 한전의 상승세가 거침없다. 지난해 말 자회사(한수원 및 발전사 포함)를 포함한 총 부채 95조1000억원, 부채비율 140.5%(57조6000억원)로 앞서 5년간 부채가 급증해 정부가 중점 관리 대상으로 선정한 12개 공기업에 포함되며 한껏 위축됐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어느덧 ‘공기업 맏형’의 위상을 회복한 느낌이다.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 한전에게는 무슨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부채, 공기업만의 책임 아니지만

 지난해 11월14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당시)은 20개 공기업의 기관장들을 불러 모아 “이제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의 공기업 개혁의 막이 오르는 것이었다.

 현 부총리는 이날 “상당수 공기업이 수입으로 이자도 내지 못할 정도라는 사실에 참담한 심경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민간기업이라면 몇 차례의 감원이나 사업 구조조정이 있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재정위험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과대 부채 ▲과잉 복지▲방만 경영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지난 5년간 부채가 급증해 정부가 중점 관리 대상으로 선정한 12개 공기업과 과다한 복리후생과 임금 상위 기관으로 꼽은 8개 공기업 기관장들이 참석했다. 이날 한국전력은 부채 중점 관리 대상 공기업으로 지목돼 함께 자리했다.

 사실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들의 비정상적인 부채비율 급등의 이유 중에는 한국노총 공공산업노조연맹(공공노련)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의 정책 떠넘기기 ▲정부 정책 실패 ▲일부에 대한 공공요금 특혜 등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실제로 한전의 경우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비정상적인 전기료 인상 억제, 민영화·경쟁체제를 전제로 시도된 정부의 구조개편 정책 등의 실패로 인한 전체 산업의 비효율성 전가, 지난해 3조5000억원에 달한 기업들에 대한 총괄원가 이하의 산업용 전기요금 특혜 등이 부채 급증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과대 부채는 발생 이유를 떠나 한전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꺼야 하는 발등의 불임이 틀림없었다.

 ◇부채 해결을 위한 노사의 노력

 한전은 대표 공기업으로서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의지에 부응하고, 공기업 부채감축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자구계획 마련에 착수했다.

 그 결과 지난 3월2일 한전은 오는 2017년까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4조7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국내외 사업 구조조정(3조원)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 부지 등 국내외 자산 매각(5조3000억원) ▲임직원 임금과 성과급 반납, 신기술 및 신공법 적용 확대 등을 통한 원가절감(4조2000억원) ▲고비용 영업제도 개선과 배전 공간·광통신설비 임대 활성화 등 수익창출 사업(3000억원) ▲이자 절감 등 금융기법 활용(1조9000억원) 등 5개 분야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한전은 이를 통해 부채증가율을 33% 감축해 2017년 부채비율을 143%(부채 총액 65조2000억원)에서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는 정부 목표 145%(65조7000억원) 보다도 5000억원(2%포인트)을 초과 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채 감축으로 한전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2383억원에서 2017년 2조2021억원으로 대폭 개선되고, 이자보상배율(1 이상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 충당 가능, 1 미만이면 불가능)도 지난해 말 0.2배에서 오는 2017년 1.8배로 크게 나아져 재무구조 역시 매우 양호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위해 한전은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경영혁신추진단을 구성하고, 그 아래에 부채감축 비대위, 방만경영 비대위, 제도·문화혁신 비대위 등 3개 비상기구를 뒀다. 이 중 부채감축 비대위에서는 상기 5개 분야에 걸쳐 17개 프로젝트를 선정, 자발적이고 선제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특히 한전의 강도 높은 개혁 작업에 근로자들이 적극 동참해 고통 분담에 나선 것이 눈에 띈다. 사측과 전국전력노동조합은 전체 개선과제 12개 중 ▲장기근속 격려금 지원 금지 ▲경조휴가일수 공무원 수준 조정 ▲산재보상 외 순직조위금 추가지급 금지 등 11개 항목에 대해 지난 6월 조기 합의하며 모범적 노사관계를 과시했다. 이어 8월에는 마지막 과제였던 ‘퇴직금 제도 개선’에도 합의함으로써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관련 방만경영 개선과제를 모두 완료했다.

 한전은 “이는 경영위기 극복과 노사현안 해결, 방만경영 개선과제의 선도적 이행을 위한 노사 공식 교섭 채널인 노사공동위원회를 지난 3월에 구성해 지속적인 협의를 진행해 왔기에 가능했다”며 “한전은 이번에 확인한 노사 신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는 문제점을 발굴 개선하고, 노사 공동의 조직문화 개선과 생산성 향상 노력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지속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반겼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처럼 노사가 합심해 회사 정상화에 나선 한전에게 준 ‘신의 선물’일까. 한전은 자산 매각의 일환으로 오는 11월 본사를 전남 나주로 이전하면서 비우게 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 부지 매각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지난 9월18일 치러진 매각 입찰에서 현대자동차그룹(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 컨소시엄)과 삼성전자가 2파전을 벌인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낙찰자로 최종 선정됐다.

 무엇보다 한전을 기쁘게 한 것은 낙찰가다. 이 부지는 축구장 12개 정도의 크기인 총 7만9342㎡ 규모로 지난해 말 장부가액 기준 2조73억원, 공시지가 기준 10조4837억원이었다. 감정가는 3조3346억원 수준으로 예정가격은 감정가와 동일했다.

 그런데 입찰에서 현대차그룹은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을 써내 이 땅을 품에 안았다. 현대차그룹은 이곳에 그룹의 글로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통합사옥과 자동차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 컨벤션센터, 한류체험공간 등 종합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한 데 모은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를 설립할 계획이다. 

 탐내던 땅을 손에 넣은 것은 현대차그룹이지만 가장 행복한 것은 한전이다. 한전은 이번 부지매각으로 올해 감축 예정이던 부채 10조9000억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한전은 이미 매매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받았으며, 잔금은 내년 1월25일과 5월25일, 9월25일 세 차례에 걸쳐 들어올 예정이다.

 물론 한전이 이 돈을 모두 ‘빚잔치’에 쓰지 않겠지만 2017년 부채 감축 목표(14조7000억원)를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뜻하지 않은 거액을 손에 쥐게 된 사실이 알려지자 주가는 치솟기 시작했다. 이날 한전은 전일 보다 5.82% 오른 4만64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로 현대차가 9.17%빠진 19만8000원으로 거래를 마감하는 등 한전 부지 공동 인수에 나선 현대차그룹 3형제가 동반 폭락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같은 날 키움증권 김상구 연구원은 “매각차익 전액으로 부채를 상환할 경우 부채비율은 약 30% 하락해 재무구조 개선이 기대된다”며 “이 경우 이자비용 감소에 따라 순이익이 연간 4000억~5000억원 가량 증가할 것이다”고 예상했다. 순이익 급증은 주주들에게는 배당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한전 주가가 계속 올라갈 ‘이유’가 생긴 셈이다.

 다음 날 삼성증권도 “매각 대금이 완납되는 내년 3분기에 약 8조5000억원의 1회성 자산처분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내년 동사의 당기순이익은 8.8조원에 달할 것. 매각 차익으로 2015년 주당 배당금은 약 3000원씩 증가하고, 부채비율은 2013년 202%에서 2016년 181%까지 하락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한국투자증권(6만3000원) 등 많은 증권사가 한전의 목표주가를 6만원 안팎으로 크게 상향 조정한 가운데 가장 보수적으로 본 삼성증권마저도 “마른 하늘에 돈벼락”이라며 투자의견을 ‘매수’로 제시하고, 목표주가 5만3000원을 제시했다. 

 ◇투자자에게는 ‘노다지 회사’

 일반 국민들이 그 동안 공기업들의 과대 부채에 불안해 하고, 방만 경영에 분노하며, 임직원의 과잉 복지를 질타하는 사이 투자자들은 공기업 부채 문제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특히 한전에 주목했다.  

 부채의 상당 부분이 물가안정을 위해 전기료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한 데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정부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만큼 지난해 11월 전기료를 평균 5.4% 인상한 데 이어 올해 또 한 번 전기료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전기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원가회수율이 아직 80% 후반대에 머물러 한전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실을 보고, 손실이 고스란히 부채로 이어지는 구조적 모순에 따른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만큼 정상화를 위한 한전의 자구 노력 여하에 따라 정부가 전기료 인상이라는 ‘선물’을 내놓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게다가 한전은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올 상반기에 순이익 7527억원을 기록했다. 순손실 1조4244억원을 냈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조1772억원 증가이며, 2007년 이후 7년 만에 상반기 연결 기준 흑자 달성이다.

 이 같은 성과는 전기 판매 수익 증가와 연료비 감소가 꼽힌다. 전기 판매 수익은 지난해 동기대비 1조6000억원 증가했다. 판매량 0.5% 증가, 판매단가 6.4% 상승에 따른 것이다. 반면 연료비는 1조4000억원 감소했다. 석탄 가격, 환율 등의 하락 영향과 저렴한 기저발전인 원자력 발전 가동률 증가로 인해 값 비싼 첨두발전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줄임으로써 연료비가 크게 하락한 것이 반영됐다.

 이 밖에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중국, 필리핀 등 해외사업 수익 증가와 재무건전성 제고, 경비절감 등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이 실적 개선을 도왔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8월 말 한국전력의 기업신용등급을 ‘A1’에서 ’Aa3’으로 상향조정했다. 등급전망은 ‘안정적’으로 봤다. 무디스는 한전이 흑자 전환하는 등 영업실적이 개선되고, 한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매우 높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처럼 수익성이 좋아진 회사가 부채 감축을 위해 노사가 합심해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것은 그만큼 주가 상승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삼성동 본사 부지 초고가 매각’이라는 특급 호재까지 더해졌으니 한전은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면서 고공 행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삼성동 부지 매각이 전기료 인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부 투자자들의 우려에 대해 증권가는 “매각 차익은 동사의 차입금 상환 및 향후 요금인상 요인을 내부적으로 흡수하는 재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며, 요금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삼성증권), “매각 여파로 전기요금이 인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지만 그보다는 향후 4~5년간 요금 인상 가능성이 상쇄되는 정도의 영향이 있을 것”(신영증권) 등의 로 예측하며 일축했다.

 덕분에 한전은 발 빠른 투자자들에게 삼성동 부지 매각 차이에 버금가는 대박을 안겨주며 고공 행진을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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