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 수도산 봉은사와 삼성동 한전부지 풍수

기사등록 2014/10/13 11:01:37 최종수정 2016/12/28 13:30:10
【서울=뉴시스】 하도겸 박사의 ‘문화예술 산책’ <16>

 얼마 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복판에 있는 한전부지 인수에 10조원이 넘는 통 큰 베팅을 한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이곳에 100년 사옥을 짓는다고 한다. 10조원 매입은 ‘과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으나 박근혜 정부가 내수활성화를 위해 세금을 매기겠다는 사내유보금을 113조 이상 쌓아두고 있는 곳이 현대자동차그룹이다. 정 회장으로서는 주식가격이 떨어지고 외국계도 시큰둥하고 노조가 반대해도 교회에서 내는 십일조에도 못 미치는 액수에 불과할 수 있다. 비싸게 사더라도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걸고 서울 시내에 현대 간판을 단 번듯한 ‘특급호텔’을 소유하고 싶다는 숙원도 풀게 될 절호의 찬스를 얻은 것으로 앞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지척인 한전부지는 교통과 입지 등의 요건이 뛰어나고 강남에서도 대규모 사업이 가능한 ‘노른자 땅’이다. 면적만 7만9342㎡다. 국제규격의 축구장을 10개 이상 지을 수 있는 규모다. 앞으로 그룹의 글로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통합사옥과 자동차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 컨벤션센터, 한류체험공간 등을 건설해 업무와 문화, 컨벤션 등이 조화를 이룬 서울시의 상징적 랜드마크로 조성하려면 5~10년가량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투입될 금액은 약 10조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풍수 지리학에서 물은 돈을 뜻한다고 한다. 현대차 컨소시엄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할 삼성동 한전 부지는 탄천과 양재천, 그리고 한강이 합쳐지는 이른바 삼합수의 지역(三水合地)으로 불린다. 전체적으로는 ‘황우음수’, 소가 물을 마시는 형상이다. 성실한 소가 물을 마시며 사는 곳이니 재운도 좋고 안정적인 땅이라고 한다. 또 한 마리 배부른 소가 풀을 뜯는 형국인 와우적초안(臥牛積草案)으로 우부지지(牛富之地·재물이 쌓이는 땅)에 해당한다고도 하는데 결국 다 같은 말이다. 우면산 또는 대모산에서 내려오는 용맥(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의 끝자락에 자리잡아 생기가 모여 오래 머무는 경기고등학교가 있는 수도산(修道山, 66.9m) 아래의 복지(福地)라고도 한다. ‘기승풍즉산계수즉지(氣乘風則散界水則止)’라고 해서 좋은 생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져 버리지만 물을 만나면 머문다는 뜻으로 풍수의 상식이 돼버린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가 명당이라는 이론과 비슷한 것이다. 많은 풍수가가 입을 모아 “명당 중의 명당”으로 이 땅을 사들인 현대에 좋은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한다. 다만 건물 방향이 현재 한전 빌딩과는 달리 탄천을 바라보거나 땅의 기운을 눌러 흐름을 끊을 수 없게 너무 높으면 안 된다고 한다.

 조계종은 옛 총무원 건물인 불교회관 건립과 동국대학교에 필요한 공무원교육원 매입을 위해 당시 조계종 신도회장이었던 이후락의 역할로 봉은사 땅 매각을 단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땅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동국대 입장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이 일로 돌아가신 법정 스님은 크게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조계종은 심각한 내분에 휩싸여 종정과 총무원장의 대결이 시작되고 당시 총무원장 월산 스님이 물러났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이후 조계종의 분규는 이 땅의 매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도 있다. 이 말대로라면 불교계로서는 참으로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운 땅이 이곳이다.

 신라의 고승 연회국사가 원성왕 10년(794년)에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한 절이 봉은사다. 조선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많은 땅을 갖게 되고 이름도 성종의 은혜를 받든다는 뜻의 봉은사(奉恩寺)로 바꿨다. 조선 시대에 승과 고시를 치르던 승과평(僧科坪)으로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역사적인 승려들을 배출한 곳으로 우리 불교계의 성지다. 특히 조선일보에서 연재한 ‘이규태 코너’가 인용한 이능화의 불교통사를 보면 조선 명종 때 보우 스님이 수도산 봉은사 주지가 돼 불법이 크게 흥성하자 왕가에서 귀의하는 이가 많아졌다. 보우 스님이 돌아가자 시기해왔던 배불(排佛)주의 유생들이 봉은사 뒷산(수도산)을 절단, 풍수목을 자르고 그 안산(案山)인 계점촌(鷄岾村)에 구멍을 파 풍수다리를 자름으로써 불도가 성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무너질 봉은사의 승풍은 아닌듯하다.

 1976년 경기고등학교 이전과 더불어 안타깝게도 수도산의 봉우리가 허물어지고 운동장 등이 들어섰다. 산은 사라지고 봉은사의 수행과 수도를 수호하는 호법신장을 자처했던 산신조차도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던가? 총무원장이 바뀔 때마다 명진 스님이 있었던 봉은사의 주지도 바뀌고 그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풍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라는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부동산업자나 주변 토지주, 건물주들에게는 1969년 봉은사가 3.3㎡당 5300원에 눈물을 머금고 팔았던 땅값이 60년도 안 지나 4억3879만원으로 몇만 배나 치솟았으니 한전 입장에서는 발복의 현장이 맞다. 이 때문에 많은 풍수가가 이구동성으로 장밋빛이야기만을 하는 건가?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도 ‘진정한 부자는 땅에 대한 개념이 남다르다. 땅은 부(富)의 근원이다’라면서도 땅값이 중요한 게 아니라 땅값에 걸맞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현대자동차의 능력이 검증받을 차례라고 강조한다. 이 땅이 독배가 될지 비약의 발판이 될지는 사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전부지 건너편에는 테헤란로 땅의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수구막이’ 역할을 잘하고 있는 건물 코엑스가 자리 잡고 있다. 테헤란로의 번성에는 코엑스 건물이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 된다. 이런 입장에서 한전 자리는 전체적으로 반궁수이며 물에 잠기는 땅이었다. 홍수 때마다 물에 잠기는 땅이었으나 상전벽해 하여 한국전력이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땅의 품성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얼마 전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로 블랙아웃 직전까지 간 것을 보면, 지기가 쇠한 그 땅을 벗어나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규순 원장은 “이 땅이 독박을 쓸 수 있는 땅이니 현대자동차 본사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2014년 7월 3일 삼성동 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서 상수도관이 파손돼 10m 깊이 공사장 중 3m까지 침수됐다. 2013년 7월 23일 중부지방에 내린 물 폭탄으로 삼성동 탄천 주차장이 침수돼 차량 수 십대가 물에 잠겼다. 2011년 7월 3일 삼성동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는 집중호우로 도로 전체가 침수됐다. 2010년 9월 22일 수도권에 내린 집중호우 즉 ‘물 폭탄’에 삼성동·논현동 등 전 지역에서 주택가 인근 하수도가 막히거나 역류하면서 다세대 주택 지하방 등이 집중적인 수해를 보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인터넷에 ‘수해’ ‘침수’를 입력하고 간단히 뒤지기만 해도 2009년, 2001년, 1998년, 1992년 등 삼성동과 관련된 수많은 수해 관련 기사를 볼 수 있다. 이 모든 게 이 지역 땅의 품성과 정말 무관한 걸까?

 우리의 풍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라 천지인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땅을 보고 그 기운의 크기와 색깔, 그리고 운명이라는 흐름을 감지해내는 일이다. 풍수는 지리학의 한 분야로 과학적인 학문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보이듯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위한 환웅 이래 우리 한민족의 고유 풍수는 현대를 사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DNA에 각인돼 있다. 풍수는 우리 민족과 나라의 생존문제와 직결되는 지혜로 단순하게 개인이나 기업의 길흉화복에 멈추지 않는다. 천재지변이 일어나 큰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같은 동네 사람들이 자다가 비명횡사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나라의 위상에도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다.

 한강 개발 3개년 계획(1968~1970)으로 현대백화점·현대고등학교와 더불어 압구정동 신화를 만들어 낸주역 가운데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대표가 포함돼 있다. 이후 물구덩이, 저습지와 모래섬인 무동도(舞童島)로 자주 침수됐던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의 삼성동은 1971년 매립공사로 제방을 쌓아 반듯한 육지가 된 삼성리(三成理)라 불리던 곳이었다. 나라에 가뭄이 들 때 황룡기우제를 지내던 신령스러운 물의 땅이기에 수력발전과도 관련 있는 한국전력공사 본사 건물이 세워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들어선다. ‘차’가 물을 만나면 즉 침수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호사가들은 우리 땅은 한강 개발 등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현대자동차의 운명을 보며 ‘인과응보’를 말할지도 모른다.

 풍수가 우리와 동고동락하는 땅의 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탐욕이나 이로움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벌이다. 아무쪼록 이 땅을 생명체로 보고 현대뿐만이 아니라 온 국토를 편안하게 만들자는 염원을 담아줄 그런 상징적 건물을 지어 주길 바란다. 한가지 제안을 하자면 땅을 판 한전은 판매금 일부를, 땅을 산 현대자동차는 땅의 일부를 동국대 총동창회(회장 박종윤)에 기부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 이 글은 미디어붓다(www.mediabuddha.net)에 연재 중인 ‘우리문화이야기 1’을 수정 보완했다.
 * 이 글은 일방의 의견을 지면에 옮긴 글에 불과하며 다른 의견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 사진은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하류의 북측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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