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방송된 '비정상회담' 12회는 시청률 4.5%(닐슨 코리아 집계)를 찍었다. SBS TV 토크쇼 '힐링캠프'(4.1%)보다 시청률이 높다. 7월7일 1.8%로 출발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매회 시청률이 올라갔다. 개그맨 유재석이 진행하는 KBS 2TV '해피투게더3'의 18일 시청률이 6.4%였다.
'비정상회담'의 인기는 시청률보다 출연자들의 행보를 보면 더 뚜렷해진다. CF와 화보 촬영은 인기의 척도다. '비정상회담'의 인기를 선두에서 이끄는 에네스 카야는 "광고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TV와 인터넷, 지하철과 버스에서까지 심심치 않게 에네스, 알베르토, 타일러, 샘 오취리, 장위안 등 '비정상회담' 출연자가 등장한 광고를 볼 수 있다.
◇ 한국인보다 더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비정상회담'의 인기 비결을 다룬 글이 많지만 출연자의 한국어 실력은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이 어떤 게스트가 나오든 상관없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동력은 바로 출연자들의 빼어난 한국어 실력이다. '뚜렷한 캐릭터'나 '흥미로운 소재' 등 흥행요소를 떠받치는 것 역시 혀를 내두르게 하는 이방인들의 걸출한 한국어 구사력이다.
매우 논쟁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어 다른 출연자를 놀라게하는 에네스 카야의 한국어 실력은 웬만한 한국인을 뛰어넘는다. 동시 통역사인 에네스는 5개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한국어를 '공부'한 사람답게 어법과 단어, 발음까지 빈틈이 없다.
프로그램 제목 중 '비정상'이 재미를 지칭한다면 '회담'은 기획의도를 드러낸다. 비정상'회담'은 외국인이 한국문화를 주제로 벌이는 '토론' 예능프로그램이다.
언어구사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회담은 깨진다. 이 전의 외국인 예능은 호기심 충족, 엉뚱한 한국어 구사로 빚어지는 촌극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토론 주제로 다뤘던 동성애나 아버지와 아들, 꿈, 한국의 청년 같은 소재는 '옳다, 그르다' 는 이분법, 혹은 '좋다, 싫다'식 단답형 발언으론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한국어 능력이 완벽에 가까워야 회담을 할 수 있다. 그래야 출신 국가나 대륙, 종교와 문화와 연결된 각자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시청자는 그 안에서 동질성과 차이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캐릭터 측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말 속에 자신의 국가와 민족, 문화를 녹여낸다. 이를 통해 '비정상회담'의 가장 큰 장점인 뚜렷한 캐릭터가 구축된다.
◇ 자연스럽게 구축된 캐릭터
'비정상회담'의 외국인들은 어떤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자보다 빠르고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들은 '프로 방송인'이 아니고 '방송 경험이 약간 있는 일반인'이란 점, 그들의 캐릭터가 각본에 의한 설정이 아니라 출신국가의 문화와 연결돼 스스럼 없이 드러난다는 점 때문이다.
캐릭터 측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출연자는 역시 터키인 에네스 카야다. 에네스는 이슬람 국가 출신답게 보수적이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 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 튀르크의 후예답게 자존심 강하고 자기 문화와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는 웬만해서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교육과 연애, 동성애 등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일반적인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접어야 할 정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터키 속담을 끊임없이 인용하는 그의 말은 꽤 논리적이고 명확해서 설득력이 있다. 그의 생각은 우리에게 생소한 이슬람 문화를 소개하는 기능도 해 시청자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에네스 카야라는 독특한 캐릭터는 시청자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에네스만 있었다면 비정상회담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벨기에의 줄리안을 비롯해 유럽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안에서 성장한 프랑스의 로빈, 독일의 다니엘은 에네스와 자주 의견 대립을 보이는 출연자다. 이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있는 유럽인에 대한 이미지와 일치한다. 가족만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성공만큼 개인의 행복을 꿈꾼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만들어진 '캐릭터 토론'은 예능적인 재미와 함께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면에서 시청자를 끌어들일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 다양한 소재를 맘껏 다룰 수 있다
'비정상회담' 이전에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은 두 가지 종류였다. 한복을 입은 그들이 장기자랑 하는 것을 '관람'하거나 여러 명의 외국인이 한국인의 이상한 점, 특이한 점 혹은 그들의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는 것 등이다. 그게 먹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유행은 지났다.
'비정상회담'의 핵심은 토론이다. 주제도 중요하다. 뻔한 소재를 다룰 수밖에 없다면 '비정상회담'의 롱런은 의심받겠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이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특별한 소재를 다룰 수 있다. 첫번째는 이들이 외국인이란 점, 두번째는 이 프로그램이 지상파 방송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비정상회담'의 토론 주제는 동성애였다. 한국 사회가 매우 자유로워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동성애는 방송에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지상파 방송은 더 그렇다. 한국 연예인이라면 말을 꺼내기도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은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송되고 있고 출연자는 외국인이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맘껏 다룰 수 있는 판이다.
여기서 멈췄다면 단순히 외국인의 다른 생각을 엿보는 것에 그쳤겠지만 '비정상회담'의 장점은 선별된 소재에 대한 세계 각국 출신 출연자들의 생각의 차이와 동질성을 가감없이 보여줘 공감을 끌어내는데 있다.
로빈은 "한 명밖에 없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면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에네스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줄리안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대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유쾌한 논쟁을 유발할뿐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마음의 여유와 더불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애초에 정답은 있을 수 없고 의견은 매번 엇갈리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jb@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