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라면 이쯤은 돼야"…독서의 계절

기사등록 2014/09/08 15:55:28 최종수정 2016/12/28 13:20:16
【증평=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증평군 증평읍 율리 삼기저수지 변에는 독서광인 백곡 김득신의 모습을 조성한 김득신 쉼투가 자리하고 있다. 2014.09.08.  ksw64@newsis.com  
【청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가을' 하면 떠오르는 말이 '독서의 계절'이다.

 추석인 8일은 가을이 시작한다는 입추가 지난 지 한 달이 됐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는 처서도 보름을 훌쩍 넘어 바야흐로 가을에 이미 들어섰다.

 책 읽기에 제격인 요즘 옛사람 가운데 충북 출신 '책벌레'로 이름이 난 백곡 김득신(金得臣·1604~1684)과 괴애 김수온(金守溫·1409~1481)의 일화를 소개한다.

 ◇'백이전' 11만3000번 읽은 김득신

 증평군 증평읍 율리에는 김득신문학공원이 있고 근처에는 올해 1월 충북도 기념물 160호로 지정된 백곡 김득신 묘소와 그의 아버지, 아들의 묘소가 있다.

 김득신은 우둔해서 여러 번 과거시험에 낙방한 끝에 59세 되던 해 증광시 병과에 급제해 뒤늦게 벼슬길에 나아갔다.

 그는 이해력이 떨어져 남보다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했는데 그가 책을 읽은 횟수를 적은 '독수기(讀數記)'에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 열전인 '백이전(伯夷傳)'을 1억1만3000번 읽었다고 했다.

 당시 '억(億)'이란 숫자는 10만을 의미했으니 '백이전'을 무려 11만3000번이나 읽은 셈이다.

 김득신은 '고문삼십육수독수기(古文三十六首讀數記)'에 1만번 이상 읽은 36편의 책 이름과 횟수를 적었다.

 김득신의 서재가 '억만재(億萬齋)'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황당하기까지 한 일화도 있다.

 김득신이 혼례를 치르던 날이다.

 장모는 첫날밤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까봐 신방에 있는 책을 모두 치워버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득신은 신부는 안중에도 없고 방 안을 뒤져 책을 찾았다.

 가까스로 찾아 밤새 읽은 이 책은 지금의 달력과 같은 책력이었다.

 김득신은 먼저 여읜 딸 장례식에서도 손에 '백이전'을 들고 있었고 부인을 잃었을 때는 친척들이 곡을 할 때 그는 '백이전'의 구절을 읊었다고 한다.

 김득신은 비록 총명하지는 않았지만 다독(多讀)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고 서울 용산에 있는 정자에서 지은 시 '용호(龍湖)'는 효종이 "당음(唐音)에 넣어도 부끄럽지 않다"고 칭찬했다.

 ◇책장 뜯으며 외운 괴애 김수온

 영동군 용산면 토용리 오얏골에서 태어난 김수온은 세종의 명을 받아 집현전에서 종합의료서인 '의방유취'를 편찬했고 벼슬이 영중추부사(정1품)에 이르렀다.

 당시 대학자 서거정, 강희맹과 뛰어난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수온 역시 책을 많이 읽었다.

 젊었을 때 남에게서 책을 빌어다가 한 장씩 뜯어서 소매 속에 넣어두고 다니면서 외웠고 외우고 나면 버렸다.

 신숙주와의 일화는 유명하다.

 신숙주는 임금이 하사한 '고문선(古文選)'이란 책을 끔찍이 아꼈는데 김수온이 간청을 해서 빌려줬으나 한 달이 넘도록 돌려주지 않아 책을 찾으러 집에 가보니 귀한 책을 조각조각 뜯어서 벽에 붙여 놓았다.

 신숙주가 사연을 물으니 "내가 누워서 외우느라 그리 됐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김수온의 묘소는 영동군 용산면 한곡리에 있고 1987년 3월31일 충북도 기념물 76호로 지정됐다.

 ksw64@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