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내년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장기간 경색국면에 빠진 한·일 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자는 데 방점을 찍고는 동북아 3국이 중심이 된 '원자력 안전협의체'를 관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이제 새로운 50년을 내다보면서 미래지향적인 우호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양국 간에 남아 있는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의 원년으로 삼자고 일본에 손을 내민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양국은 오래 전부터 문화적, 정서적 교류의 전통을 이어왔다. 양국 국민들은 문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교류의 폭을 더욱 확대하면서 양국 관계의 저변을 견고히 지탱해 주고 있다"며 한·일 관계가 어디까지나 선린우호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아울러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읽고 올바른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데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은 오히려 양 국민의 마음을 갈라놓고 상처 주는 일을 하고 있다"며 일본 정치 지도자들과 일반 국민을 구분해 접근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직접 촉구하고 일본이 과거사를 계속해서 부정할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올해 3·1절 기념사에 비해 수위를 상당히 낮춘 것이다.
특히 당시 박 대통령은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고,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일침을 날렸지만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강도 높은 비판을 자제했다.
위안부 문제도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일본 지도자들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해 왔고, 특히 군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그 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전향적 조치를 요구해 왔다"며 이 문제가 해결돼야만 한·일 관계의 건실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수준에서만 언급했다.
다만 "역사의 진실은 마음대로 가릴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후손들이 앞으로도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갈 것이고 역사의 증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있어야 진정한 관계개선이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은 유지했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는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으로 원자력 안전문제가 지역주민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한국과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된 협의체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북한과 몽골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한·중·일 원자력 안전협의체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미국 방문길에서 밝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구체적 방법론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비정치적인 이슈에서부터 다자협력을 통한 신뢰를 쌓은 뒤에 역사나 영토 등의 대립적 이슈를 호혜적 입장에서 풀자는 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골자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대일 메시지의 수위를 조절한 것은 지난달 25일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일본 도쿄도지사와의 접견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이다.
당시 한·일 관계 복원을 희망하는 아베 총리의 '간접 메시지'에 박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진정한 신뢰관계를 쌓아 양국관계를 견고하게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고 답했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은 경색된 양국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한 일본 측의 진정성 있는 조치들이 어떻게 취해지는지 지켜보기 위해 강경기조를 다소 누그러뜨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일이기도 한 이날 정부 추도식에서 전쟁 중 아시아 국가들에 많은 피해를 입힌 책임에 대해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료까지 봉납하면서 박 대통령이 강조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은 아직 요원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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