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엄마'에서 '발명가'로…오블리치 전은희 대표

기사등록 2014/07/06 17:03:22 최종수정 2016/12/28 13:01:04
【대구=뉴시스】김태원 기자 = 5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3층에서 개최되고 있는 대구경북 중소기업제품판매점에 참가한 '오블리치' 전은희(39) 대표가 상품을 손에 들어보이고 있다. 2014.07.06  bplace27@newsis.com
【대구=뉴시스】김태원 기자 =  '며느리, 여보, 엄마'

 모든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가 오면 이름 석 자 외에 이 세 가지 호칭을 갖게 된다. 그러나 전은희(39)씨에게는 두 가지 호칭이 더 있다. '선생님'과 '대표님'이다. 

 남들보다 두 개 더 많은 호칭을 가진 전씨의 하루는 그야말로 24시간으로는 모자랄 정도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12살, 8살 난 아이들의 등교와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고 나면 오전 내내 구내 체육관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한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오후 수업까지 있어 하루 종일 눈 코 뜰 새 없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에서 '대표님'으로 변신할 시간이다. 요즘 그는 완제품으로 나온 자신의 발명품을 다시 개선할 방안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편리하고 세련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할 시간이 다가오지만 집에서도 이 생각에 손을 놓을 수 없다. 저녁식사를 함께 한 가족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어도 전씨의 하루는 다음 날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끝이 난다.

 "평범한 주부에서 갑자기 발명가가 됐다가 또 그 발명품을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사업체의 대표가 되니까 얼떨떨 하기도 해요. 하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적응하는 것 같네요, 힘든 것도 모르고 긍정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가 발명한 제품은 작은 족집게 모양의 1인 염색 기구다. '오블리치'라는 이름의 이 제품은 플라스틱 족집게 끄트머리에 자그마한 솔을 붙여 새치염색과 부분 염색을 손쉽게 해주는 도구로 이미 새치로 고민하고 있는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점점 판매량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3일부터는 대구백화점에서 개최된 중소기업제품판매전에 참여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모든 발명가들이 그렇듯 전씨의 발명도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부터 시작했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새학기마다 의례적으로 실시하던 과학발명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딸과 함께 머리를 맞대던 중이었다.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발명품을 생각해내던 가운데 문득 자신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새치' 문제를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흰 머리가 많았는데 30대 중반 쯤 되니까 귀밑머리 쪽에 흰 머리가 많이 생겼어요. 염색을 하려고 보니까 굳이 다른 검은머리까지 염색하는 게 번거롭다고 느껴서 딱 새치가 많이 나는 부분만 염색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편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여기서 발명품을 떠올린 거죠"

 발명품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이건 특허감이다"라며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응원에 탄력을 받고 특허 등록을 했더니 특허청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국내 여성발명대회에 발명품을 출품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이 발명품으로 그는 2009년 여성 발명대회에서 변리사 회장상을 받았다. 이후 2010년 세계여성발명대회, 2013년 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씨는 1인 기업의 대표로 거듭났다. 소소하게 가계부를 쓰던 그의 손은 이제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다. 그는 "갑자기 숫자 0이 너무 많아지니까 무섭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구=뉴시스】김태원 기자 = 5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3층에서 개최되고 있는 대구경북 중소기업제품판매점에 참가한 '오블리치' 전은희(39) 대표가 인터뷰에서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4.07.06  bplace27@newsis.com
 마케팅 방법이나 경영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경북테크노파크와 경일대학교가 중소기업청과 연계한 사관학교식 입소형 창업선도대학에 입소해 교육을 받기도 했다. 전업주부와 필라테스 강사로만 굳어진 몸과 마음을 사업자의 몸과 마음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1년 여 동안의 교육을 받은 전씨는 이제 신진 여성발명가들을 위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어엿한 발명가로 성장했다.

 "강의 요청이 들어왔을 때는 아직 제가 햇병아리라는 점을 들어서 거절했었는데 그 쪽에서는 오히려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성공한 여성발명가보다는 이제 막 차근차근 밟아가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면서 다른 분들이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준다는 거죠"

 아이들은 그가 엄마에서 발명가로 변신한 것을 신기해 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나서서 엄마의 발명을 응원하고 "이런 발명은 어떨까"라며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도 했다. 스스로 엄마를 '나의 롤 모델'이라고 부르며 열심히 서로 발명 경쟁을 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지난 4월 교내 발명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도대회에서도 동상을 수상했다. 아들이 낸 발명품은 '전기밥솥 칸막이'. 현미밥이 먹고싶다는 아빠와 잡곡밥을 먹고싶다는 엄마를 보며 생각해 낸 아이디어로 밥솥 안에 스테인레스 칸막이를 넣어 한번에 각자의 밥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얘기해요. '엄마처럼 원래 직업도 가지면서 발명가로도 일하고 싶다'. 가끔 일이 바쁘면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 쓸 때가 있어 가정에 소홀해 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먼저 엄마를 응원해주고 또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는 걸 보면 다시 한 번 힘을 내게 되죠."

 그는 대형마트 입점을 앞둔 지금도 완제품을 보면서 개선점을 찾아내고 있다. 직업병이 된 것 같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고객들이 제품에 대해 말하는 것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전은희씨가 발명가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절대 두려워 하면 안 되는 것이 두 가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실패'다. 창조성이 가장 중요한 발명인 만큼 수십번, 수백번의 실패는 당연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실패를 거듭해 나갈수록 완성품의 품질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하나는 '남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는 일부 발명가들을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자신의 발명품을 꼭꼭 숨겨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길까봐 자기 안에만 발명품을 가둬놓으면 도리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이다.

 "숨겨놓기만 하는 발명품에는 발전이 없어요.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정보와 자문을 구하면 이 모든 게 합쳐져서 더욱 좋은 제품으로 태어나는 거죠. 가장 큰 실수는 자기 것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자기 안에 갇혀버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르는 것은 뭐든지 물어보고 배우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죠"

 bplace2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