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프랑스 파리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마침 UNESCO에 파견근무가 있던 파리 15구에 자리 잡은 후배 집에서 지냈다. 아이가 둘 있는 집에 머물기가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중매(소개)해 준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다. 매일 새벽 출근길에 에펠탑 아래를 지나 강을 건너 샤요 궁을 거쳐 개선문까지 갔다. 콩코드 광장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벗어나 센 강을 따라가면 루브르 박물관이 나온다. 오전을 박물관에서 보내다 근처 길가에서 점심을 때우고 일부러 퐁네프다리를 건너 오르세미술관을 보고 로댕미술관과 앵 발리드를 거쳐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대형 슈퍼마켓에 들러 우리나라에서 사면 10배나 비쌀 몇천 원도 안 하는 와인 2병을 사 들고 가는 가난한 선배의 손이 즐거웠다. 퇴근한 후배 부부와 오래 묵혀둔 듯한 치즈에 물 반 홍합 반이라는 대서양에서 잡은 홍합 수프. 그렇게 한잔하던 2주간은 칸트도 부럽지 않은 시기였던 것 같다.
몽파르나스나 몽마르트르 그리고 노트르담 사원 등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는 참으로 아름답다. 파리 시내의 건물들은 담벼락이 없다. 벽도 붙어있다. 일부 건물은 마치 벽조차도 함께 쓰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서도 뭔가 편안해지는 모습은 왜일까? 지금까지 맞벽 건축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지역 등 일부에서만 허용해왔다.
요즘 우리나라의 동네는 언젠가부터 1층을 주차장으로 만든 다세대주택이 대세다. 흉물스럽기까지 한 대한민국 도심지 주차장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1층에는 차들만 있으니 아이들이 나와 놀지를 못한다. 할렘가처럼 점점 슬럼화 돼가는 듯한 모습과 깨진 유리창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차들 때문에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는 아이는 이제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동네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지고 새벽이나 심야에는 주차 문제로 싸우기도 한다. 삶의 질은 이렇게 팍팍해지고 생활은 점점 더 불편해진다. 부동산 가격은 올랐지만, 사는 것은 힘들어진 셈이다. 마치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차장은 지하에 만들어 내려가게 하고 1층을 살려서 마을을 환하게,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담도 허물고 그래서 얻은 장소에 주차시설이 아닌 공동의 작은 공원이나 놀이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최소한의 나무라도 몇 그루 심고 파라솔 우산이라도 꽂고 앉아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바라보면서 한가롭게 지유명차의 보이차라도 한잔 할 수는 없을까? 올 10월부터 이게 가능해졌다. 이른바 ‘건축 협정 구역제도’다. 2005년부터인가? 몇 년간 이를 두고 국회에 계류됐던 법안이 통과돼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이웃 간에 건축협정을 맺고 노후주택을 정비할 때 주차장과 조경시설을 같이 만들 수 있게 된다. 국토해양부가 노후주택 정비를 활성화하고자 관련 규정을 대폭 완화한 건축법과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2012년 6월 29일 입법 예고됐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노후 도심 주택지에서 주택을 정비하면 인근 주민과 건축협정을 하면 협정 필지를 하나의 대지로 해 주차장, 조경시설, 지하층을 통합해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좁은 필지 내에 주차장을 마련해야 했기에 작은 다세대주택 등에는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법령의 통과로 건축협정을 하면 여러 개 필지를 묶어 건축물을 정비할 수 있게 된다. 주택정비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건축협정 필지 전체를 하나의 대지로 간주하고 부설주차장, 조경, 지하층을 통합해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제조다. 주택 정비지역 주민들은 건축협정구역(20필지 이내)에 지하층을 공동 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고 필지별 조경을 공동 설치해 주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의 올해 10월 시행을 기다리던 건축가 노휘는 대부분 아파트 분양광고에 ‘지상에 주차장이 없는 것’을 강조하는 걸 보면 분명 주차장화 돼버린 기존 시가지는 불편했다고 한다. 최근 새로 입법 예고된 ‘협정구역제도’는 공동주택의 개발방식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줬다고 설명한다. NGO 나마스떼코리아에서 재능기부를 하던 그를 만났다. 개별 필지로 나뉘어 있어 좁지만 어쩔 수 없었던 대지지만, 소유주들이 협정하면 주차장 공동개발, 조경면적 공동 활용 등이 가능해 효율적인 토지이용과 함께 단지계획을 할 수 있다고 기뻐한다. 동시에 신축을 하는 소유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제도가 없어서 소규모 개발이 불가능했던 경우이거나, 동네에 뜻이 맞는 소유주들이 있다면 공동개발을 하거나 이를 유도하는 개발 사업이 예상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법이 공동체의 이점을 누리는 것을 허락해준 것이다.
노휘는 2014년 파크오 프라자 주상복합에서 소유자가 다른 두 개의 필지를 하나로 취급해 주차장 출입구 개수를 줄이고 함께 사용하는 중심 마당을 만들었다. 건축가는 주어진 제도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제도의 부족한 부분을 알리고 개선하는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건축법은 상부에는 건물이 있지만, 하부는 비워진 공간인 피로티(Piloti) 하부를 실내 면적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내로 전용할 수 있다는 우려로 실외인데도 실내로 취급하기도 한다. 사후 처리보다는 애초부터 방지하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옥상에 그늘이 있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지상에서 아케이드 공간 같은 건물 하부의 그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 실제로 활용성이 좋은 풍부한 공적 공간을 도시에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데도 법규의 ‘우려’ 사항 때문에 제한되고 있다.
건축의 현재 상황은 공유하는 삶보다는 상업적 권력과의 상호작용에 더욱 민감해지고 있다. 건축가들은 삶을 바탕으로 하는 건축이 일상으로의 관심을 되찾기 위해서 프로그램의 구성을 심도 있게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축 이외의 분야와 다양한 접촉과 공동 작업을 통해 그동안 건축이 자리 잡아 온 구조적 한계선을 허무는 작업이 필요하다. 법규의 우려를 불식하고 새롭게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제한과 규제를 풀어 주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건축가의 책무다. 바로 이런 점이 노휘 건축가에게 매력이라고 한다. 자신을 항상 되돌아보고 내가 믿는 것이 곧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점, 나를 숨길 수 없다는 점, 그래서 항상 다시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노휘 건축가는 미국 U.C.L.A. 건축대학원에서 유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양을 차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시민 디자인위원회 심의위원으로 공공건축물을 조정하고 있다. 고려대와 연세대 건축학과 등에서 설계 튜터로서 후진을 양성해 왔다. 청담동 복합시설(2013), 만도 폴란드 생산시설(2012), 삼양 이노캠(2011), 국회의사당역 출입구(2009), 화성종합경기타운 성화대 및 게이트(2009), LIG 넥스원 연구소(2007), UCSF 아파트, 베이징 복합시설, 연세세브란스 병원(1996) 등에 참여했다.
※ 하도겸은 사회와 문화예술종교계의 자성과 쇄신을 바라는 입장에서 더 맑고 밝은 나아감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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