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시스】김희준 기자 = '포수의 전설' 박경완(42) SK 와이번스 2군 감독이 은퇴식을 치르면서 23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접는 소회를 드러냈다.
박경완은 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끝난 뒤 공식 은퇴식을 갖고 그라운드에 작별을 고했다.
현대 유니콘스와 SK에서 5차례(1998·2000·2007·2008·2010년) 우승을 경험한 박경완이 꼽은 최고의 우승은 2007년이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해도 2007년이었다.
박경완은 "2007년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98년 현대에서 우승할 때는 뭣 모르고 우승을 했고, 2000년에는 4승3패로 이겨 짜릿했다. 하지만 가장 짜릿한 것은 2패를 한 뒤 우승을 한 2007년"이라고 말했다.
그는 "2패 후 '끝나나'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적의 4연승을 했다. 당시 2패 후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승2패가 된 이후 5차전이 승부처라 생각했다. 7차전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해도 2007년"이라고 말한 박경완은 "풀타임을 뛰면서 가장 힘든 한 해였다. 김성근 감독님이 부임한 이후 엄청나게 훈련을 했다. 당시 은퇴할 시기인가 고민했는데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경기가 시작되기 10분 전인 오후 4시50분께 하늘에서는 예보에 없던 비가 내렸다. 그는 "선수 시절 장비를 지원받았던 미즈노에서 새 장비를 보내줘 정비를 하고 있었다. 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늘이 내가 흘릴 눈물을 다시 흘려주나 생각했다"며 웃어보였다.
박경완은 이날 경기 전 특별한 시구를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프로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김원형 SK 투수코치의 공을 받아 2루로 던지는 시구를 펼쳤다.
"긴장이 많이 되더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은 박경완은 "20세 처음 잠실구장에서 교체 출전했을 때 볼도 안보일 정도로 긴장했다. 그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긴장이 되더라"며 "(김)원형이 사인을 기다리길래 나도 모르게 사인을 냈다. 2루 송구를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최근 배팅볼을 많이 던져서인지 정확히 가더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오랜만에 포수 장비를 착용해봤다는 박경완은 "새로 온 장비를 정비해서 입고 나갔다. 선수 때의 착용감을 느끼고 싶었다. 기분이 좋더라"며 감회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김원형 못지 않게 박경완과 인연이 깊은 투수가 SK의 왼손 에이스 김광현(26)이다.
박경완은 "프로 데뷔 첫 해인 2007년에는 볼이 좋지 않았다. 긴장을 많이 했다. 김광현을 살려야 SK가 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습 때 좋은 볼을 던져도 실전에서 못 던지더라"며 "그런데 2008년에는 실전에서도 좋은 공을 던졌다.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김광현이 좋은 슬라이더를 갖고 있었지만 리드할 때는 힘들었다"는 박경완은 "아무래도 구종이 2개 밖에 없지 않나. 구종 2개로 여러가지를 만들어야 해서 힘들었다. 이 때문에 투구수가 많은 투수라 '투구수를 어떻게 줄일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박경완에게 어려운 투수는 김광현 뿐만이 아니었다. SK의 왼손 투수 고효준도 그에게 어려운 투수였다.
박경완은 "고효준이 김광현보다 더 좋은 볼을 가진 투수인데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에 빠져드니 좋지 않은 상황이 온다. 백네트에 3번 연속으로 공을 던지는 투수는 처음 봤다"며 껄껄 웃었다.
10년 넘게 '최고의 포수'라 불리는 것이 부담은 없었을까.
박경완은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이다"면서도 "하지만 이 자리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아파서 수술을 하고도 바로 풀타임으로 뛰었다. 그 때 포수가 (정)상호 뿐이었는데 상호가 잘하면 내가 기회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회를 주기도 싫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포수로서 많은 투수의 공을 받은 그는 정민철 현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와 선동열 현 KIA 타이거즈 감독의 직구를 최고로 꼽았다. 그는 "정민철의 직구는 볼이 끝에서 떠올랐다. 선동열 감독님의 공은 진짜 손이 너무 아팠다. 돌덩이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경완은 "슬라이더는 조용준과 김수경이 가장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포스트 박경완'으로 꼽은 것은 롯데 자이언츠의 주전 포수 강민호다. 그러면서도 "이에 버금가게 할 수 있는 것이 정상호다. 근성이 조금 약한데 그런 부분만 고치면 정상호도 강민호 못지 않게 할 수 있다. 이재원도 좋은 포수가 될 선수"라고 한솥밥을 먹은 후배들에 대해 애정을 드러냈다.
박경완이 꼽은 최고 포수의 덕목은 '팀 평균자책점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시즌 전 내가 (목표로)하는 것이 팀 우승과 팀 평균자책점 1위였다"고 말한 박경완은 "팀 평균자책점 1위가 내게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패색이 짙어지면 패전처리(투수)가 나온다. 그러면 포수가 사인을 대충 내는데 팀 평균자책점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패전처리를 키워 중간계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포수로 활약한 박경완이 선수 시절 단 등번호 26번은 SK 구단 최초의 영구결번이 됐다.
쌍방울에서 현대로 트레이드되면서 26번이라는 등번호를 선택했다는 박경완은 "26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26번을 택했다. 그 때 남은 번호를 쭉 보니 32번, 26번이 있었는데 선수 생활을 32년 동안 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그래서 26번을 골랐다"고 의미를 전했다.
SK 2군 감독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박경완은 "고민도 많고 부담도 많이 된다. 선수 때에는 오더를 따르면 됐지만 이제 내야하는 입장이다"며 "선수 기량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발전시킬지 고민이 많이 된다"고 밝혔다.
박경완은 "그러다보니 운동량이 많아지는데 1군 선수를 따라가려면 더 해야한다. 선수들이 힘든 것을 알지만 고비를 넘어야하지 않나"라고 근성을 강조했다.
아킬레스건 파열 등 적잖은 부상을 이겨내고 23년간 선수로 뛴 박경완은 "요즘 선수들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야구 선수라면 부상을 모두 갖고 있는데 조금만 아파도 크게 표현하는 선수들이 있다. 내 상태가 70%라면 거기서 최선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jinxij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