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싱어'는 가수와 그 가수를 모창하는 도전자가 노래 대결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대중의 귓가에 주로 각인된 신승훈의 목소리는 예전 테이프와 CD에 있던 그것이다. 기억이 현재를 지배하는 탓에 더 그렇다.
신승훈의 목소리는 그러나 계속 변화는 중이다. 다시 말하면, 더 짙어진 감정과 노련함이 스며들며 '완성형'으로 가는 중이다. 9일 오후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열린 신승훈의 단독 콘서트 '2013 더 신승훈쇼-그레이트 웨이브'는 이러한 진보를 오롯하게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신승훈의 목소리는 '처음 그 느낌처럼' 애틋한 발라드 가수의 원형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그러나 세월과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장르에 어울리게 된 유연한 목소리의 힘이 드러났다.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포문을 연 신승훈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 OST '아이 빌리브'를 연달아 불렀다. '아이 빌리브'는 특히 간주 뒤 보사노바로 편곡해서 색다름을 더했다.
올해 데뷔 23년째를 맞은 신승훈은 "92년 6월28일 '보이지 않는 사랑' 콘서트를 통해 체조경기장에 처음 섰는데 20년이 지나서도 체조경기장에 설 수 있다는 자체가 영광"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날 운집한 1만명에게 "당시 왔던 분들도 있느냐"고 묻자 약 2000명 정도가 환호성을 질렀다. "함성과 톤과 데시벨이 달라졌어요. 낮아졌어요. 세월은 막을 수 없죠. 소리 지르시는 것은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관절도 안 좋을 텐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람의 관계가 포도주 같죠. 23년 산 가치를 매길 수는 없죠. 23년 산 와인 같은 음악에 취해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10대 팬클럽이 사전에 이날 콘서트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객석에서 이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너희들이 학교에서 왕따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이어 신승훈 콘서트 때면 손님처럼 찾아오는 '비 오는 날'에 제격인 '오늘 같이 이런 창 밖이 좋아'를 들려줬다. 팬들에게 한쪽 손 손가락을 반대 쪽 손바닥을 두드려 빗소리를 내는 방법을 일러줘 공연장의 분위기는 더욱 그윽했다. 블루스풍의 '가을 빛 추억'으로 로맨틱함을 이어갔다. 신승훈 콘서트에서 공식 율동이 지정돤 '엄마야'로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잔잔한 무대로 분위기를 바꿨다. 돌출 무대에서 의자에 앉아 통기타를 튕기며 '오랜 이별 뒤에'를 부를 때는 1만여 팬들이 모두 따라 부르기도 했다.
최근 발매한 '그레이트 웨이브' 타이틀곡 '소리'와 수록곡 '내가 많이 변했어'를 들려준 뒤에는 펑키 풍의 '로미오 줄리엣'을 록 풍으로 편곡해서 들려줬다. 신시사이저 소리 같은 일렉 기타 리프로 시작한 '비상'을 부를 때는 크레인을 타고 플로어석 공중을 휘젓기도 했다. 하우스 풍의 '처음 그 느낌처럼'을 부를 때 뜨거운 분위기는 화룡점정, 팬들이 모두 객석에서 일어나 방방 뛰었다.
이후 신승훈이 발라드 4단계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처절하고 애절한' 곡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가잖아' '이런 나를' '보이지 않는 사랑' '그 후로 오랫동안' 등 명곡 발라드는 그의 주종목인만큼 진가를 확인케 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사랑'은 일부분을 무반주로 불러 절절함을 더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의 마지막은 팬들이 무반주로 떼창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노랫말 중 "눈물~" 부분을 신승훈처럼 팬들이 길게 끌었고, 이를 받아 신승훈이 마저 부르는 모습에서는 궁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승훈은 "23년을 노래 하다보니 일부에서는 저를 레전드(전설)라고 표현하시는데, 아직은 아니에요. 하지만 솔직히 레전드가 되고 싶어요. 레전드 오브 레전드가 되고 싶습니다. 가수로 시작해 지금은 뮤지션인데,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할 따 패기와 열정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는데 여러분 때문에 다시 용기를 얻습니다"라고 팬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그 때 무대 위 스크린이 객석에서 어느 팬이 들고 있는 '아티스트 신승훈' 현수막을 비췄다.
신승훈은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을 부르며 막을 닫고 무대를 내려갔다. 이후 팬들의 앙코르가 이어졌고 클래식 공연처럼 60인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중가수 공연에서 이례적인 신선함이었다. 그리고 위아래로 하얀색 수트를 입은 신승훈이 등장했고, '마이 멜로디'가 울려퍼지면서 3시간 가량 공연이 마무리됐다.
신승훈은 이날 콘서트에서 지난 6년 간 발매한 3부작 프로젝트 앨범 '스리 웨이브스 오브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3 WAVES OF UNEXPECTED TWIST)' 시리즈로 보여준 변화의 모습도 녹여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인 '그레이트 웨이브' 수록곡인 디스코 풍의 분위기 '러브 위치'에서는 댄스 실력을 과시하며 환호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게스트 출연도 변화된 모습을 반증했다. 신승훈의 콘서트에는 그간 게스트가 없었으나, 이날 공연에는 '그레이트 웨이브'에도 참여했던 프로듀서 겸 가수 라디(33·이두현), 래퍼 버벌진트(33·김진태)가 힘을 보탰다.
콘서트를 기획한 CJ E&M 콘서트사업부와 함께 무대에 쏟아 부은 물량도 대단했다. 보통 콘서트의 총 제작비용은 시스템 35%, 가수 개런티 30%, 대관 및 마케팅 20%, 인건비 10%, 기타 운영비 5%로 구성된다. 이번 신승훈의 공연은 그러나 시스템 제작비가 총 65%에 이르렀다. 체조경기장 3회에 해당하는 물량이 1회 공연에 투입된 것이다.
한류 스타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기도 했다. 플로어석 좌측 맨 앞에는 300여명의 일본 팬들이 자리했다. 아이돌 위주의 K팝 스타들이 많음에도 예전부터 일관되게 신승훈을 좋아한 이들이다.
무엇보다 3시간을 장식한 약 25곡의 대부분이 히트곡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예전의 추억들과 현재의 소중함이 절로 결합하는 특별한 경험들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팬들과 계속 대화를 하고 싶다면서 수다스런 모습을 보인 것은 정겹게 느껴졌다. 노래할 때 진지한 모습을 유지하는 가수의 본분을 잊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가수와 팬 사이에 자연스레 쌓인 세월의 켜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세련된 사운드에서도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는 여전했다. 신승훈의 음악적 모티브이기도 한 이 사자성어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을 뜻한다. 신승훈표 발라드의 애틋함을 상징한다.
그래도 신승훈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현재 진행형임을 증명한 콘서트였다. 발라드의 황제는 그렇게 황제 직에 연연하지 않고, '위대한 물결'(그레이트 웨이브)을 찾는 음악여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