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잡기노트]아십니까, 풍산김씨 허백당 문중
기사등록 2013/10/06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08:09:27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381>
168년 전인 1845년 5월24일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한글로 답장을 했다. 며느리가 친정에 다니러 간 뒤 마을에 역질이 발생해 걱정을 하던 중 무사하다는 며느리의 편지를 받고 안심했다면서 가까이에 있는 외가도 방문하고 편하게 지내다가 돌아오라는 내용이다. 또 아들을 보내 며칠 묵어오게 하고 싶지만 아들이 두창(천연두)에 걸려 보내지 못해 민망하다는 말과 함께 사돈의 안부를 두루 묻고 한 번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
이 편지는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의 23세손 김중후가 안동시 온혜리에서 봉화 오록으로 시집온 진성이씨 며느리에게 보낸 것이다. 편지에 을사 5월24일이라고 적혀있는데, 풍산김씨 족보에 따르면 온혜에서 시집 온 며느리는 진성이씨 이만식의 딸인 것으로 확인된다.
【서울=뉴시스】남애정사잡영(8장 가운데 일부)
김세락(1854∼1929)은 1914년 부인 진성이씨의 두 번째 기일을 맞이해 제문을 적어 영전에 올린다. 가로 119.5㎝ 세로 24.2㎝의 장문으로 절절한 추모의 마음을 담고 있다. 진성이씨는 퇴계의 후손으로 17세 때 풍산김씨 학사 종가로 출가해 46년을 함께 살면서 조상의 제사를 잘 받들었고, 집안의 상사와 혼사에 정성을 다해 가정을 화목하게 꾸려갔다고 한다. 처음 시집을 와서 부끄러워 감히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하지 못한 세월이 거의 10년이고, 집안 어른들 병구완을 하려 약방을 구하고 기도를 하면서 지낸 세월이 30여년이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재주가 있는 사람의 운명이 박하다고 하더니 부인은 재주가 비상해 운명이 도와주지 않으니 어찌할 수가 없다고 탄식했다. 시아버지의 병 수발과 자식들 양육에 쏟은 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그 슬픔을 말로써 표현할 길이 없다고 했다.
김세락은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의 25세손으로 김진흠의 맏아들이다. 문장이 뛰어나 많은 후학들을 지도했으며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풍산김씨 허백당 문중은 고려 고종 때 판상사(判相事)로 풍산백(豊山伯)에 봉해진 김문적을 시조로 한다. 중종 때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11세 허백당 김양진은 청백리로 유명하며 가문을 크게 중흥시킨 중시조다. 14세 유연당 김대현은 안동의 오미동 뒷산에 죽암정사를 지어 문중 자제들의 교육에 힘썼다. 유연당의 여덟 아들이 모두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가운데 5형제가 대과에 합격하는 등 문운이 번성했다. 인조는 그 소식을 듣고 ‘팔련오계지미(八蓮五桂之美)’라고 치하했다. 여덟 송이의 연꽃과 다섯 그루의 계수나무다. 연꽃은 사마시의 합격자, 계수나무는 대과의 합격자를 일컫는다. 팔련오계를 포함해 풍산김씨 허백당 문중에서 과거에 합격한 사람은 112명에 이른다.
이 문중은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안동시 풍산읍 오미동 오미광복운동기념공원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20명 이상의 풍산김씨 인물들의 공적이 돌에 새겨져있다. 이 중 김순흠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토오적문(討五賊文)’을 유림에 배포하고 “일제치하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단식 끝에 자정(自靖) 순국했다.
9명은 국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김순흠·김낙문·김병태·김병련·김지섭·김보섭·김만수·김구현·김재봉 등이다.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증빙자료가 모자라거나 다른 사정으로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인물은 15명에 이른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이 한국인을 6000여명이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지섭은 이를 응징하고자 1923년 의열단을 대표해 도쿄로 가서 일본 왕궁에 폭탄을 투척, 처음으로 일본왕에게 책임을 물은 인물이다. 김재봉은 경성공업전습소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과 사회운동에 투신하고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서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국학진흥원 제10회 기탁문중특별전 ‘민심을 보듬고 백성을 생각하며’가 7일부터 내년 1월5일까지 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열린다. 풍산김씨 허백당 문중 주요 기탁자료 130여점을 선보인다.
문화부장 reap@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