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오페라, 그 경건함…5시간35분 대장정 '파르지팔'

기사등록 2013/10/02 11:21:18 최종수정 2016/12/28 08:08:37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탄생 200주년. 그의 최후의 악극인 오페라 '파르지팔'이 마침내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했다.  

 1882년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초연한 '파르지팔'은 애초 2008년 한국에 첫선을 보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예술의전당 화재 사건 등으로 인해 무산됐다.

 기다림이 길었던만큼 기대가 컸다. 국립오페라단(단장 김의준)의 '파르지팔'은 한 마디로 그 기다림을 보상하고 기대를 충족시킨다.

 오후 4시부터 9시35분까지 무려 5시간35분여의 대장정이다. 관객들이 버거워할 법도 하나 이날 1500석은 물론 3, 5일 공연까지 이번 공연 총 4500석이 단숨에 매진됐다.  

 총 3막으로 1막과 2막의 인터미션이 1시간에 달한다. 저녁 시간대인만큼 관객들의 식사를 위한 배려다. 이날 오페라극장 로비에는 파르지팔 관객을 위한 특별 도시락까지 등장했다. 총 300개를 준비했는데 100개 이상 팔려나갔다. 카페에는 '파르지팔 샐러드 세트' 메뉴까지 나왔다.

 '파르지팔'은 '인디아나 존스'부터 '다 빈치 코드'까지 수많은 소설과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성배(聖杯) 전설이 토대다. 중세 스페인의 몬살바트 사원을 배경으로 성배를 지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대결이 주축이다. 착하고 용감한 성배 수호 기사 '파르지팔'이 마법사에게 빼앗긴 성창(聖槍)을 되찾고 왕이 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해석했다.

 특히 원작과 달리 극의 마지막에 쿤드리가 죽지 않는다. 파르지팔은 왕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고자 한다.

 한국 관객이 가장 주목한 이는 기사단을 이끌면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인물인 '구르네만즈' 역의 베이스 연광철이었다. 그는 타이틀롤인 파르지팔보다 비중이 큰 인물을 맡아 묵직한 저음으로 기품 있고 안정된 가창과 연기력을 선보였다.  

 '파르지팔' 전문가수로 통하는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가 파르지팔 역을 맡았다. 벤트리스는 지난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스테판 헤르하임 연출의 '파르지팔'과 뮌헨국립극장 페터 콘비츠니 연출의 '파르지팔' 등에서 연광철과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만큼 구르만네즈와 교감하며 성장하는 파르지팔 역을 무난하게 소화한다.

 정신 나간 여자에서 팜 파탈까지 다양한 매력을 선보인 '쿤드리' 역의  메조 소프라노 이본 네프는 유려한 리듬을 보여줬다.

 이와 함께 무대도 돋보였다. 고전을 모던하게 해석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일품이다. 특히 2막에서 붉은색으로 물든 꽃처녀들의 정원이 눈에 띄었다.

 뾰족한 조개처럼 생긴 대형 푸른색 얼음돌 속에 감춰졌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붉은색 성배, 점점 붕괴하는 기사단을 상징하는 것으로 점차 몸통을 뉘우는 대형 나무도 인상적이었다.

 각 막 중반부터 서서히 위용을 뽐내는 거울도 눈길을 끌었다. 무대 뒷편 전면에 설치된 이 거울은 스모그가 걷히는 막의 중간부터 약 30도 이상 앞으로 기울며 무대 전체를 비춘다. 이는 무대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관객의 시야를 확장하는 동시에 인물들의 동선과 심정을 또 다른 방식으로 투영, 입체감을 준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또 다른 작품 '탄호이저'를 연출한 필립 아흘로의 연출은 소문대로 일품이었다. 바그너의 기품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독일 슈튜트가르트국립극장 음악감독 및 수석지휘자를 지낸 로타 차그로섹이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색은 작품처럼 차가우면서도 열정적이었다. 국립합창단과 CBS소년소녀합창단의 합창 역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처럼 오페라는 장르가 경건하고 우아하다는 것을 '파르지팔'은 증명한다.

 배우와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무려 350명이 참여했다. 배우들과 합창단이 등장하는 커튼콜은 인원이 많아 인사만 했는데도 10여분 이상 걸렸다. 그런데도 객석의 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국립오페라단이 마지막으로 공연한 바그너의 작품은 1979년 '탄호이저'다. 그 전에는 '화란인' '로엥그린' 등의 바그너 작품을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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