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청춘스타 한지일, 미국에서 이토록 비참하게 살고있다

기사등록 2013/09/23 17:43:15 최종수정 2016/12/28 08:05:41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영화배우 한지일(65)이 자신의 인생 2막을 다루는 KBS 2TV '여유만만' 제작진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여유만만'은 당대를 풍미한 청춘스타에서 밑바닥 삶으로 추락한 한지일의 현 처지를 26일 방송으로 공개한다. 그는 지난 4년간 메릴랜드, 오하이오, 버지니아, 일리노이 등 미국 곳곳의 마트에서 박스를 날랐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았다.  

 '여유만만'은 23일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온 마켓으로 출근할 예정이던 한지일의 밝은 표정을 현지에서 담았다. 그는 '여유만만' 녹화 후 미주중앙과 인터뷰에서 "이젠 한지일로 당당히 살아야죠"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여유만만' 촬영을 마친 상황에서 시온 마켓 취업이 불발되고 말았다.

 한지일은 "마지막 인생 승부처라고 생각했던 LA 시온 마켓에 자리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LA 시온 마켓 측으로부터 프런트 매니저 발령을 받기 직전 무산됐다. 마켓 체인의 황규만 회장은 오케이했으나 LA점장이 채용을 거부했다"고 털어놓았다.

 한지일은 "(시온마켓 점장을) 다섯 번 만나 부탁했지만 일자리 제공을 거절당했다. 눈물로 돌아섰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또 다시 일어서겠다. 이를 악물고 꼭 일어나겠다. 일을 할 때는 밝아지지만 홀로 있으면 자살충동에 시달린 적도 여러번이다. 그래도 잘 살아있다. 지켜봐 달라"고 다짐했다.  

 실제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모씨는 22일 "우연히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배우 한지일씨를 뵙게 됐다. '향토식품'이라는 곳에서 젓갈과 건어물 등등 한국특산품 판촉행사를 하고 있었다. 제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내 아버지 생각도 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며 뉴시스에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지일은 미국에서 가명 '케빈 정'을 쓰며 자신을 숨겼다. 나이 탓에 육체노동 업종 취직이 어려울까봐 1960년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1988년식 자동차를 몰고 일터를 찾아다니고 있다.

 한지일은 1969년 데뷔, '얼짱' '몸짱' 겸 당시 드문 고학력 연예인(경희대 신문방송학)으로 주목받았다. 데뷔 당시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한소룡'으로 15년 간 활동하다 '한지일'로 개명했다. '길소뜸'에 출연하는 한소룡에게 이장호 감독이 "무술배우도 아니면서 한소룡이 뭐냐"고 한 것이 계기다. '길소뜸'에서 공연한 신성일의 '일', 김지미의 '지'를 따와 한지일이 됐다.

 7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8년 '경찰관'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받았고, 1979년 작 '물도리동'은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1986년 시카고영화제에서 겟츠평화대상을 따낸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에서도 한지일은 열연했다. 1988년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신혜수) 수상작 '아다다'의 남자주인공도 한지일이다. 이듬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강수연)을 거머쥔 '아제아제바라아제'는 그에게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선사했다.

 승승장구하다 1990년대 말 IMF 사태의 여파로 100억원대 재산을 날리고 행복한 가정도 잃었다. 여성단체들의 지탄 대상도 됐다. '젖소부인 바람났네' '정사수표' '마가씨' '아줌마' 등 에로비디오 시리즈를 제작한 장본인인 탓이다. 한지일은 2005년 SBS TV 드라마 '그 여름의 태풍' 카메오 출연을 끝으로 연예계와 인연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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