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프레드 아이허 "잡음과 느낌, 그것도 음악이다"…독일 ECM 대표

기사등록 2013/08/30 19:21:40 최종수정 2016/12/28 07:59:12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독일의 명품 음악 레이블 ECM 설립자이자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가 30일 오후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기자회견 중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영상, 사진, 회화, 음악 등을 통해 ECM의 역사와 철학을 되돌아보는 아시아 최초 전시회가 오는 31일부터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2013.08.30.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내가 탐구하고 싶은 음악을 선택한다. 아직 수용하지 않은 것은 내가 모르는 음악이다. 예술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는 것이 컨템포러리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에디션 오브 컨템포러리 뮤직'의 머리글자를 딴 독일 음반 레이블 ECM의 만프레드 아이허(70) 대표는 30일 "음악 안에 시적인 부분이 녹아 있거나 개성과 독창성이 살아 있는 음악이면, 어떤 종류든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을 내세우는 그는 "'라디오헤드'든, 절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이든, 내가 그 음악을 들으면서 개성과 창의성를 느낄 수 있는 시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앨범으로 만들고 싶다"고 바랐다.  

 아티스트가 존경하는 아티스트인 아이허가 이끄는 ECM은 1969년 독일 뮌헨에서 탄생한 회사다. '소리의 절대미학'을 목표로 클래식의 녹음시스템을 적용, 격조 있는 음악으로 만든 주역으로 평가 받는다.  지금까지 1200장이 넘는 앨범을 제작한 아이허는 베를린 음악아카데미에서 음악을 공부했으며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이기도 하다.

 ECM은 2007년에만 칸의 미뎀, 뉴욕의 재즈기자협회 선정 '올해의 레이블'이 됐다. 2008년 영국 그라모폰도 ECM을 올해의 클래식 레이블로 꼽았다.

 재즈와 클래식을 중심으로 현대음악과 민속음악까지 아우르는 레퍼토리, 키스 재릿, 칙 코리아, 랄프 타우너, 클래식의 안드라스 시프, 하인츠 홀리거 등의 아티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개성을 중시하는만큼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가 ECM에서 베토벤을 발매하는 것과, 독일의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이 베토벤을 발매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아이허는 "베토벤은 베토벤이니까, 베토벤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부분은 내가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아티스트와 프로듀서, 엔지니어의 화학 작용에서 섬세하게 보여지는 부분에서 ECM만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독과 배우의 관계와 비슷하다. (아이허와도 작업한) 장 뤼크 고다르가 '안나 카레니나'를 찍었을 때 전반적인 줄거리는 같겠지만, 무엇인가 달라지는 식"이라고 답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독일의 명품 음악 레이블 ECM 설립자이자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가 30일 오후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영상, 사진, 회화, 음악 등을 통해 ECM의 역사와 철학을 되돌아보는 아시아 최초 전시회가 오는 31일부터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2013.08.30.  photocdj@newsis.com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어느 날에 어떤 일을 하느냐, 그러한 사소한 일과 관계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듀서와 엔지니어, 아티스트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러한 관계를 다듬어 하나의 융합된 분위기를 만들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는다."  

 뮤지션을 선택하고 앨범을 만드는 것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가지다. 예컨대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가 연주하는 부분을 듣고 해당 사운드를 알아보고 싶다는 흥미가 생겨서 결정하기도 하고, 개인적이고 개성적이지만 진실된 음의 순간을 마주할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아이허가 발굴한 재즈기타리스트 팻 매스니(59)도 그와 같은 사례다. "매스니와 처음 작업했을 때 그는 잘 나가는 기타리스트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게 더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이 경우처럼 그 사람의 음악을 들었을 때 영감이 떠오르거나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작업을 한다. 뮤지션에 대한 공부도 하지만 직관적인 작업을 중요시 한다."  

 ECM은 상업성을 배제한 녹음뿐 아니라 커버 디자인, 타이포그래피까지 일관성 있는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다. 특히 사진가 토마스 분슈와 에버하르트 로스, 미술가 마요 부허 등이 작업한 재킷 디자인은 예술 작품과 다를 바 없다. 음악을 음원으로 다운로드해서 듣는 시대에 이런 작업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  

 "나는 아날로그 때부터 음악을 접했다. 카세트 테이프를 포장지에서 뜯어 낼 때 소리와 테이프에서 나오는 잡음, 나는 그것이 음악이라는 범위 안에 다 포함된다고 여긴다. LP 같은 경우도 판에 바늘이 닿을 때 나는 잡음과 판을 재킷에서 꺼낼 때 느낌이 다 음악적 경험이다. 그런 경험을 못한 사람은 다운로드 받는 경험이 전부겠지만 내 기준으로 음악이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다양한 예를 들며 음악을 들을 때의 느낌을 전했다. "콘서트에서도 음악 뿐 아니라 많은 것을 염두에 둔다. 음악을 듣을 때 일부 경험만 한다면, 제작자 입장에서 아쉬울 것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느낌과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소리도 독서의 경험에 포함된다. 영화도 처음부터 순서대로 본다. 감독의 의도대로 스토리텔링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도 음악을 그런 식으로 작업한다. "청중도 그렇게 들어줬으면 한다. 음악을 쭉 나열했을 때 스토리가 있고, 쉬는 타이밍도 있는데 그런 경험과 느낌을 전달하고 싶다. 내가 아티스트 입장에서 전하고 싶은 것을 순수하게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ECM의 목표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독일의 명품 음악 레이블 ECM 설립자이자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가 30일 오후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ECM 전시 중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영상, 사진, 회화, 음악 등을 통해 ECM의 역사와 철학을 되돌아보는 아시아 최초 전시회가 오는 31일부터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2013.08.30.  photocdj@newsis.com
 31일 개막하는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전시장을 미리 둘러 본 그는 한번으로는 전시물과 사운드에 대한 감상평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하는 등 레이블 이미지처럼 신중했다. 

 실제 삶도 꼼꼼할 것 같다. "일을 할 때나 사생활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인정했다. "중간에 콘트라베이스로 전향하기는 했지만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 바이올린을 선물 받은 뒤 음악에 대한 사랑이 시작됐고, 지금까지 계속됐다. 일을 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생활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알렸다.

 아이허는 31일부터 11월3일까지 서울 전역에서 펼쳐지는 ECM페스티벌을 위해 이번에 처음 내한했다.  

 ECM의 역사와 철학을 되돌아보는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11월3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9월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ECM영화제가 펼쳐진다.

 9월 3~7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ECM뮤직페스티벌'이 마련된다. 시프,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 기타리스트 랄프 타우너, 비올리스트 킴 카슈카시안 등 ECM의 아티스트가 무대에 오른다. 시프와 홀리거는 지휘자 정명훈과 그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공연한다. 한국인 보컬로는 처음으로 ECM에서 음반 '루아 야'를 출시한 신예원(32)도 무대에 선다.

 전시 기획자인 김범상(41) 글린트 대표는 "ECM의 팬으로 아이허를 존경하는 (괴테의 문학 조수) 에커만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전시라서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도 "고등학교 때 (ECM의 대표 뮤지션인) 키스 재릿의 '마이 송'을 듣고 좋아한 지 20년이 흘러 아이허 옆에서 전시를 오픈한 것 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낯선 음악을 알리는데 목적이 있다기보다 40년 역사를 관통한 예술과 철학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것이 비단 음악 뿐 아니라 삶에 있어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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