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태생부터 동명영화 아우라의 그림자를 떠안는다. 필연히 이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1000만명 이상이 본 동명 영화(감독 추창민)가 바탕이라는 점에서 인지도는 쌓아 놓고 시작한다. 영화가 작품성을 인정 받은 만큼 그러나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발목을 잡는다.
공연 내내 영화의 아우라가 연극에 아른거릴 수밖에 없다. 영화의 잔영과 희미한 그림자가 물결 지어 종종 무대 위를 움직인다. 그런데 영화와 달리 이야기와 감정이 전개되는 가운데 연소된다. 천민 '하선'이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비운의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을 연기하면서 왕의 사명감을 얻어가고, 그가 왕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자 '허균'과 신뢰가 구축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영화의 단출한 점프컷처럼 헐거운 편이다.
허균이 광해를 대신하면서 왕실의 법도를 몰라 빚어지는 코믹한 상황은 웃음을 머금는데 그치고, 영화에서 코믹한 역으로 긴장감을 누그려뜨린 '도 부장'은 그러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에 비해 더 부정적인 결말은 짙은 연민을 발휘하지 못한다.
배우들은 영화 속 배우들과 다른 종류의 아우라를 내뿜으며 선방한다. 특히, 연기력으로 내로라하는 이병헌(43)과 똑같이 1인2역을 소화한 탤런트 배수빈(37)은 연극에 대한 애정만큼 안정감을 안긴다. 이병헌보다 카리스마는 덜하나, 이병헌의 그림자에 눌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높게 살 만하다.
영화의 20분의 1 가량에 불과한 제작비는 오히려 무대에 여백의 미를 살리며 '연극적'인 작품으로 탈바꿈하는데 도움을 줬다. '스트릿 라이프', '뮤직 인 마이 하트', '카페인' 등 주로 밝고 트렌디한 뮤지컬로 잘 알려진 연출가 성재준은 영화 같은 애절한 감정을 옮겨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음악 경험을 살려 작품 내내 울리는 타악기 등 음악적인 템포를 잘 살려냈다.
총평하자면, 영화가 바탕인 작품으로 연극적인 요소를 살리는데는 성공했으나 원작의 미덕에는 다소 헐겁다. 그래도 영화와 비교해 보는 맛은 있다. 다른 결말은 제작진이 인기 영화를 연극으로 가져오면서 고민했다는 증거다.
뮤지컬 '셜록 홈즈'로 주목 받은 뮤지컬배우 김도현이 배수빈과 번갈아 가며 광해와 하선을 맡는다. 허균은 뮤지컬배우 박호산과 김대종이 더블캐스팅됐다. 연극배우 손종학, 황만익, 임화영, 강홍석, 김진아 등이 출연한다.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볼 수 있다. 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02-3014-2118
영화의 아우라에 밀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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