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를 드러낸 채 맨바닥에 질펀하게 앉은 남자가 여인을 뒤에서 품는다. 단속곳을 내리고 곰방대를 문 여자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먹색의 맑은 농담과 번짐, 붓질의 반복으로 묘사한 언덕과 진달래 나뭇가지의 표현에서 단원 김홍도(1745~1806?)의 화풍을 느낄 수 있다.
조선 최고의 춘화첩 가운데 하나인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은 혜원 신윤복(1758~?)의 춘화로 전해진 작품이다. 온몸에 홍조를 띤 젊은 남자는 홀딱 벗고 있다. 반회장 저고리를 입은 여성의 가체는 반쯤 풀어진 상태다. 방안에는 소철나무 화분과 술안주 소반이 놓여있다.
단원은 서민 생활의 단면을 소박하고 유머 넘치게 다뤘지만, 혜원은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남녀 간의 춘의(春意)를 주로 그렸다.
조선의 춘화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배경의 비중이 크다. 유홍준(64)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춘화는 서정적이다. 담뱃대나 재떨이, 촛대, 물오른 버드나무 등이 주변의 세팅된 듯한 분위기가 외국과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혜원 신윤복과 공재 윤두서(1668~1715), 관아재 조영석(1686~1761), 긍재 김득신(1754~1822), 긍원 김양기(?~?), 혜산 유숙(1827~1873), 소당 이재관(1783~1837), 심전 안중식(1861~1919) 등의 조선 후기 풍속화 10점이 나온다.
이 가운데 심전 안중식의 10폭 '평생도'는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돌잔치, 혼인, 과거시험, 장원급제, 관찰사 부임, 회혼례, 회방연 등 양반의 일생을 담고 있다.
평민 출신 화가인 기산 김준근(19세기 중엽~20세기 초)의 미공개 작도 있다. 기존에 알려진 1572점 외에 새로 발굴된 79점 중 50여 점이 전시된다. 김준근의 작품은 독일 베를린 미술관과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 세계 유명 박물관에 조선 시대 풍속화로는 가장 많이 소장됐다.
유 교수는 "우리 춘화의 매력은 화사한 분홍빛의 진달래밭이나 녹음진 개울가, 연녹색 봄버들의 달밤 연못가 등 열린 공간에서 온몸을 드러내고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라며 "특히 때론 해학적이고 낭만이 흐르고, 과장하지 않고 가식 없는 에로티시즘이 우리 춘화의 감칠맛이자 아름다움"이라고 소개했다.
전시 기간인 23일 오후 2시 유 교수가 '옛사람들의 삶과 풍류', 2월13일 오후 2시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조선 춘화의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강의한다. 전시는 2월24일까지다. 02-2287-3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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