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럽 배낭여행을 했을 때가 1990년 7월이었으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비행기가 공산 국가인 구소련의 영공을 지날 수가 없어 알래스카를 지나 북극을 넘어 유럽 대륙으로 갔다. 당시 나는 네덜란드 항공(KLM)의 여객기를 탔었는데, “지금 북극을 통과하고 있습니다”라는 기내 방송과 함께 북극 통과증까지 줬다. 당시는 먼 항공 여정 때문에 이틀이 걸려서야 유럽에 당도했는데, 요즘의 유럽 여행은 이웃집 가는 듯하다.
유럽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한국은 마치 수 세기가 지난 것 같다. 당시만 하더라도 ‘코리아’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적어 “88올림픽”이라고 하면 그때야 ‘오 세울!‘하면서 알아줬다. 그런 나라가 불과 20년 사이에 K-팝으로 온 세계를 물들이고 있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처음으로 유럽의 도시들을 봤을 때는 골목 한 귀퉁이도 모두가 예술 작품 같아서 감동이 컸는데 뜻밖에도 나의 여행 노트에는 “유럽은 수명이 다 된 별이 최후의 광채를 발산하고 있는 곳 같다. 그간 너무도 많이 읽고 배워온 곳이라 신비로울 것이 전혀 없는 여행”이라고 적혀있다.
그 당시 나는 유럽의 클래식 음악을 종교 이상으로 의지하고 살았다. 이탈리아 신부님, 수녀님께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안 성가를 배웠던 데다가 문학 서적이며 역사책도 서양의 것을 봤다. 그러다 보니 그 때 나에게는 이성과 논리가 최고의 덕목이었다. “오른 손은 베토벤, 왼손은 성 프란치스코”가 나의 생활 지침이었으니 사실 나는 껍데기만 한국인이고 속은 유럽인이었는데도 그런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유럽 땅에 발을 놓고 보니 나의 정체성이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런던 근교에 있는 캠핑타운에 배낭을 풀고 보니 온 세계에서 몰려온 가지각색 인종의 젊은이들이 마치 늘 만나오던 친구들 같이 서로를 대한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만나는 사람들 마다 Good Morning! 어느새 낯선 땅 외국이라는 느낌이 사라졌는데, 거기에는 그 친구들의 ‘오픈마인드’도 한 몫 했지만 그간 젖어온 서양식 사고와 문화가 맞아 떨어졌기때문이기도 하다.
근 두 달에 걸쳐 유럽 전역을 여행했는데, 당시 인상 깊었던 것은 어디를 가나 마주치게 되는 거리의 악사들과 히피족이었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산발한 머리는 붉고 파란 물을 들이고 담배를 피워대는 히피족들은 그 당시 젊은이들의 자유로움을 상징했다. 아주 모범적인 대학생들도 “나도 한 때는 히피족이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던 시절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 세계 곳곳을 다니며 유럽 클래식 못지않은 고도로 발전된 다양한 민족의 아트뮤직을 만났기에 이제는 유럽음악도 한 문화권의 특정한 음악으로 여기게 됐다. 그래서 유럽 음악과 여러 민족 음악을 견줘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다.
1990년 전 세계적으로 람바다 열풍이 불면서 국내에서도 람바다를 다룬 영화가 세 작품이나 수입·개봉됐다. ‘블레임 람바다’, ‘카오마의 금지된 춤- 람바다’, ‘열정의 람바다’가 그것인데, 그 중에 내가 들었던 것은 ‘열정의 람바다’였다. 이 영화가 한국에 개봉된 때가 1990년 8월, 내가 유럽으로 떠난 직후 개봉됐다가 돌아올 때는 막을 내렸으니 나와는 어긋나는 인연이었다.
흑인이나 인디언 어부들이 추던 춤에서 유래한 람바다 춤은 요즘 아이돌의 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외설적인 요소가 강하다. 이 춤은 1930년대 말 브라질의 바이하이 지방에서 시작돼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남성 파트너의 한쪽 다리에 여성 파트너가 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아 앞뒤로 스텝을 밟거나 남녀가 허벅지를 교차해 비비며 몸을 흔드는 동작이라 성적인 장면을 노골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이 춤이 처음 생겨났을 때는 외설적 측면 때문에 하층민의 저속한 춤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989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새롭게 각광받으면서 이 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연달아 만들어 졌다. 프랑스에서 먼저 인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자 온 유럽과 서방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필자가 여행한 90년대에는 나이트클럽이건 길거리건 젊은이들이 어울려 노는데 람바다 춤이 빠지지 않았다. 제네바에 갔을 때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어떤 여자 아이가 하도 람바다 춤을 잘 추기에 사진을 찍어 오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 지인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람바다 춤을 추는 아이’라고 하니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런 야한 춤을 추느냐?“고 묻곤 했다. 람바다에는 ‘떨기 춤’ 비슷한 동작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런 춤을 추면 귀엽고 익살스럽기까지 해서 추는 사람에 따라 표정이 달랐다는 것이 또한 매력이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사정이 달랐던 것 같다. 당시만 하더라도 보수적인 정서가 남아있던 한국이었으니 람바다 춤이 그리 쉽게 발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돌의 섹시한 춤을 봤을 때 한국식 람바다를 만들어 본다면 새로운 한류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