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 문화비평]진격의거인·마이웨이, 위험 대작

기사등록 2011/12/11 07:31:00 최종수정 2016/12/27 23:10:11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지난주 일본영화사상 최대 규모 블록버스터 제작계획이 발표됐다. 신인만화가 이사야마 하지메가 소년매거진에 연재하고 있는 만화 ‘진격의 거인’ 실사 영화판이다. 일본 최대영화사 도호가 제작·배급할 예정이며, 도호 측에선 이미 “일본영화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를 투입해 원작의 세계관을 충실히 재현할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연출은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고백’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나카시마 테츠야가 맡았다. 내년 5월 초 촬영에 들어가 후년인 2013년 개봉 예정이다.

 그런데 이 영화화 계획은 어딘가 불안한 구석을 남기고 있다. 일단 원작만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진격의 거인’ 무대는 중세적 분위기가 감도는 가상세계다. 그러나 이 세계의 인간들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어느 시점엔가 갑자기 등장한 ‘거인’들에게 잡아먹혀 인류멸망 직전까지 내몰렸다. 거인들은 3~15m 크기로, 생체유지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 어떻게든 인간을 먹어치우려 세상을 배회한다. 결국 살아남은 인간들은 한 곳으로 몰려들어 시가지를 만들고, 시가지 주위로 높이 50m의 성벽을 3중으로 에워싸 거인들의 침입을 막았다.

 ‘진격의 거인’은 이 막강한 성벽이 50m가 넘는 초대형 거인의 출현으로 100년 만에 무너지면서부터 시작되는 얘기다. 일련의 젊은이들과 성벽 안의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거인들과 싸워나가며 어떻게 해서든 ‘두 번째 성벽’이 함락되지 않도록 투쟁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같은 원작만화의 영화화에 있어 문제가 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흥행에 불리한 등급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용에서도 보듯 ‘진격의 거인’에는 잔혹묘사가 필수불가결하다. 일단 말 그대로 거인들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 외에 거인들과 싸워나가는 과정에서도 잔혹묘사들이 많다. 그런데 이를 완화시켜버리면 원작만화 팬들의 실망과 항의가 불 보듯 빤한 상황이다. 애초 ‘진격의 거인’은 그 음울한 무드 설정 탓에 주목받은 면이 크기 때문이다. 12세 관람가로 만들어진 ‘드라큘라’를 과연 누가 볼지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그런 문제 탓에, 결국 영화판은  R-18 등급, 즉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감안하고서라도 원작의 묘사에 충실하리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러면, 당연한 얘기지만, 18세 이하 관객층을 모조리 잃게 된다. 일본은 여전히 10대 영화관객들이 전체 흥행구도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므로 이 같은 등급설정은 위험성이 크다. 더군다나 “일본영화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를 투입”하는 입장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사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진격의 거인’은 아직 영화화가 이뤄질 ‘단계’가 아니란 점이다. 그만큼 인기가 떨어진단 얘기가 아니다. 아직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충분한 전개가 이뤄지질 않았단 얘기다. 바로 지난 12월9일에야 6권이 발매됐다. 5월 촬영 직전까지라 봤자 잘해야 7권까지 나오게 된다. 일반적으로 영화화까지 이뤄진 만화들은 ‘20세기 소년’이나 ‘데스 노트’처럼 완결이 됐거나, 최소한 ‘간츠’처럼 15~20권 이상은 나와 어느 정도 전개의 맥이 잡힌 것들이었다. 실제로 ‘진격의 거인’은 현 시점까지 잘 해야 설정단계 정도나 넘긴 상황이어서, 설정부 정도 외 원작만화에서 영화가 빌어갈 부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나머지는 영화제작진 측에서 ‘지어내야’ 한다. 원작의 탄탄한 완성도에서 비껴나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오히려 원작보다 더 나아진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런 예가 최소한 지금까지는 없었다.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얘기다. 사실 엄밀히 말해 ‘진격의 거인’이 지금 영화화된다는 건, 초반 전개에만 10권 이상이 들어가고, 한 번 히트하면 40권 이상도 너끈히 넘기는 일본소년만화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체 어쩌다 이처럼 무리한 영화화 계획이 성립된 걸까. 더군다나 지나치게 섬세해 오히려 박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영화계에서 말이다. 상당부분 초조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밖에 달리 볼 길이 없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패턴의 블록버스터 중심주의로 지난 수년 간 승승장구해온 일본영화산업의 초조감, 절박감, 관성적 무리수가 작용했다고 봐야한다.

 물론 일본 블록버스터의 역사는 나름 길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거대규모 시대극 ‘7인의 사무라이’와 괴수특촬물 선봉이었던 ‘고질라’가 탄생한 게 벌써 1950년대니 반세기도 넘은 셈이다. 그러나 총 영화관객수가 1억5000만 명대 이하로 떨어지고 일본영화 시장점유율이 50%대 이하로 떨어진 1986~87년 이후 블록버스터급 영화제작은 크게 둔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2년 일본영화 시장점유율이 27.1%까지 떨어지는 악몽 같은 상황을 맞게 되자 그제야 일본영화계는 자구책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오히려 대범한 승부수만이 살 길이란 결론이 나오게 됐고, 마침내 블록버스터 제작의 부활이 선포됐다. 그런데 당시는 막 할리우드에서 ‘스파이더-맨’ 영화화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뒤 할리우드 전체가 슈퍼히어로 만화의 영화화 작업에 들어갈 때였다. 일본 역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본만화를 팬베이스 삼아 블록버스터에 도전해야 한다는 계획이 나오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2006년 작열하게 된다. 만화를 베이스로 삼은 블록버스터 ‘리미트 오브 러브 우미자루’ ‘데스 노트-더 라스트 네임’ ‘일본침몰’ 등이 모두 50억엔이 넘는 어마어마한 흥행수익을 거둬낸 것이다. 이 같은 만화원작 블록버스터들의 선전을 통해 일본영화계는 1985년 이후 무려 21년 만에 시장점유율 50%대를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한 번 성공전례가 생기니 당연히 같은 전략이 지속됐다. ‘도로로’ ‘게게게의 키타로’ ‘20세기 소년’ ‘이겨라 승리호’ ‘고에몬’ ‘가무이 외전’ ‘스페이스 배틀쉽 야마토’ 등 만화원작 블록버스터들이 일제히 등장해 시장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우미자루’나 ‘데스 노트’ ‘게게게의 키타루’ ‘20세기 소년’의 속편들도 계속 등장해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해서 2003년 287편까지 떨어졌던 일본영화제작편수는 2006년 이후 꾸준히 400편대를 넘어서게 됐고, 총 영화관객수도 2010년, 1974년 이후 최고수치인 1억7435만 명대를 기록하게 됐다.

 그러다 문제가 생긴 건 바로 올해, 2011년부터다. 시장을 받쳐주는데 큰 역할을 맡아 주리라 기대했던 만화원작 블록버스터 ‘간츠’ 전후편의 성적이 예상 외로 저조하게 나왔다. 전편은 간신히 30억엔대를 넘겼고, 2편은 그마저도 안 돼 20억엔대에 머물렀다. 20억엔대는 몇 년 전만 해도 ‘크로우즈 제로’ 같은 중급 콘텐츠가 얻어내던 수익이었다.

 그나마 펜베이스가 존재하는 만화원작이 이 정도인데, 원작 베이스가 없는 블록버스터들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전작 ‘아말피: 여신의 보수’가 36억5000만엔을 벌어들였던 ‘안달루시아: 여신의 보수’는 총수익이 전작의 딱 반 정도에 머물렀다. ‘프린세스 토요토미’ 같은 시대극 블록버스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부진이 계속된 탓에 올해 일본영화 시장점유율은 또 다시 50%대 이하로 떨어지리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럴 때 절대 나와선 안 되는 전략, 그러나 이상하게도 모두가 택하는 전략이 있다. 방향성수정은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이전 방향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전략이다. 블록버스터 중심주의가 기존전략이라면, 오히려 덩치를 더 키워 ‘크게’ 승부하려는 전략이 된다. 그에 더해, 만화원작 블록버스터는 ‘원래 되는 거’였으니 방향수정할 필요가 없고, 지금 상황은 ‘쓸 만한 원작베이스’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벌어진 일로 결론 내려지게 된다. 결국 ‘핫’한 원작만 잡으면 만사오케이라는 식으로 가버리게 된다.

 그러니 결국 문화현상으로까지 등극한, 현 시점 가장 ‘핫’한 ‘진격의 거인’밖에 떠오를 만한 게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꽂히다’ 보면, R-18 등급 위험성 따윈 보이지도 않게 되고, 설정이나 겨우 끝난 정도 전개도 아무 문제가 안 돼버린다. 나아가 애초 배경과 인물설정 자체가 ‘일본’이 아니란 점까지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이 같은 발상은 틀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명백하게 잘못돼있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블록버스터 중심으로 시장을 계속 끌고 나가려는 움직임은 언제나 위험하다. 처음엔 좀 먹히지만 금세 펑크가 나버린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본래 미국 외 국가의 블록버스터들은 일종의 ‘우리도 할 수 있다’식 자긍심을 먹고 사는 콘텐츠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시장을 침식당해온 국가들의 관객들은 대부분 그런 코드에 쉽게 반응한다.

 문제는 그 효용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에 있다. 보통 6~7년 정도, 길어야 10년 정도다. 대부분 ‘신생장르가 팔린다’는 구조인데, 한 마디로 ‘우리나라에선 처음 시도해보는 장르’란 캐치프레이즈가 팔린다. 그런데 그런 캐치프레이즈는 당연히 1회성이다. ‘두 번째 시도’부턴 자긍심 코드와 아무 상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6~7년만 지나면 웬만큼 자국시장 여력으로 해볼 수 있는 장르는 한 번씩이라도 다 건드려보게 되고, 그 과정이 다 끝나고 나면 자국 블록버스터 열풍도 기세가 꺾이게 된다. 한 번 해봤던 장르더라도 완성도가 높으면 장사는 되지만, 이전만큼은 잘 안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시장저하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면서 블록버스터 중심주의가 깨지고, 이후부턴 간간이 시장분위기 상승을 위해 블록버스터가 일부 배치될 뿐 시장중심은 자국시장 특성에 충실한 중급 콘텐츠가 채워주게 되는 식이다.

 이 같은 시장구조는 홍콩, 프랑스, 한국 등지에서 순차적으로 반복돼온 것이다. 홍콩은 1982년 ‘최가박당’을 기점으로 화려한 혼성장르 블록버스터에 매진해오다 결국 1990년대 주성치 코미디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자국시장 특성에 맞는 중급 콘텐츠 시대로 나아가게 됐다. 프랑스도 1990년대 중후반부터 ‘택시’ 프랜차이즈, ‘아스테릭스’ 프랜차이즈, ‘크림슨 리버’ 프랜차이즈, ‘아더’ 프랜차이즈 등을 선보이며 블록버스터 전성시대를 열어가다가 2006년 소품 코미디 ‘스틱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역대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소품 코미디 시대가 새롭게 열린 상황이다.

 한국도 1999년 ‘쉬리’를 기점으로 시작된 블록버스터 시대가 2006년 ‘괴물’의 대성공으로 정점에 오른 뒤 급락, 영화산업도 덩달아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시장분위기에 적응한 모습이다. 올해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한국영화는 ‘최종병기 활’ ‘써니’ ‘완득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도가니’ 순이다. 이중 ‘써니’ ‘완득이’ ‘도가니’는 사실상 전형적인 중급 콘텐츠로 볼 수 있다. 한국시장 특성을 고려한 중급 콘텐츠다. 그나마 돈이 좀 들어갔다는 ‘최종병기 활’과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도 제작규모 면에서 딱히 블록버스터라 부르긴 어려울뿐더러, 노선과 방향성 차원에서도 ‘괴물’ ‘해운대’ 등 기존 한국 블록버스터가 지향하던 지점과 다르다. 이런 식으로 한국영화산업은 ‘블록버스터 시대 이후의 시대’에 적응해낸 셈이다.

 일본은 지금 ‘블록버스터 시대’가 열린지 5~6년쯤 된 상황이다. 지금부터가 위험하다. 2011년 한 해 동안의 예상 밖 흥행저조 상황은, 적어도 시장변화가 ‘시작되기는 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 ‘진격의 거인’ 실사영화판은 어쩌면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막차를 놓친’ 콘텐트가 될 수도 있다. 시장변화를 내다보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한 피해자 격 콘텐트 말이다.

 그런데 이미 시장변화가 올 한 해 동안 뚜렷이 가시화된 한국에서도, 오는 22일 무려 300억 원대 제작비를 들인 한국영화사상 최대 블록버스터 ‘마이 웨이’가 개봉될 예정이다. 과연 ‘마이 웨이’가 막차를 ‘타는’ 콘텐트가 될지 막차를 ‘놓치는’ 콘텐트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마이 웨이’가 손익분기점인 1000만 관객을 넘기건 못 넘기건, 시장변화에 대한 단초 정도는 모두가 파악했길 기대할 따름이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