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신라의 권력자 미실이 주인공인 동명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작가 김별아(42)씨가 또 다시 역사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채홍(彩虹·무지개)'을 펴냈다.
김씨의 열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 유일의 왕실 동성애 스캔들의 주인공인 세종의 며느리 순빈 봉씨의 정념과 탈주를 다룬다.
김씨는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두 번째 빈으로서 궁중 스캔들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려진 순빈 봉씨에게 '난(暖)'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녀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책 제목의 뜻이기도 한 무지개는 태양의 반대편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 역시 왕이라는,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 있어 가려진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 갈등, 질투 등을 다룬다. '채홍'은 이들을 은유하는 상징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조선시대를 공부하고 있는데 유교를 기반으로 한 조선은 굉장히 도덕을 강조했다"며 "노예와 노비, 서얼 등 특정계층을 억압하고 통제했다. 그 중에서도 세자비 등 왕실의 여성들이 가장 큰 희생양이었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의 사랑 자체가 큰 죄였던 시기이기도 하죠. 드라마에 흔히 나오지만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사랑 때문에 교수형에 처해진 경우도 꽤 돼죠. 봉씨는 동성애 때문에 폐빈이 되는 등 일종의 명예 살인의 주인공이에요."
세자와의 소원한 관계가 공론화되고 3명의 후궁을 들이게 되면서 봉빈은 더욱 불안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태기가 보여 마음이 한껏 부풀었으나 기쁨도 잠시, 상상임신으로 밝혀진다.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던 가운데 봉빈은 동궁나인인 '소쌍'을 발견한다. 살내와 사람냄새, 삶의 향취를 느끼게 해준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봉빈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김씨가 역사소설을 쓰는 이유는 독자들이 그 시대와 사람들에게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지금 역사는 학교에서 연대기적으로 배우는 것과 역사 드라마 등을 통해서 배우는 판타지, 양 극단을 오가고 있다"며 "나 같은 경우는 팩트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1차적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최대한 사실의 정서에 가깝게 쓰고자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채홍' 같은 경우는 동성애가 소재라 잘못하면 선정적이거나 상업적으로만 비칠 수 있죠. 독자들이 관음적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에요.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봉씨의 아픔과 슬픔을 보길 바라며 썼어요."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일단 내가 여성이니 감정 이입이 잘 된다"며 웃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사 자체가 남성 중심의, 강자 또는 승자의 기록"이라며 "그 뒤에 밝혀지지 않은 추문과 패자의 역사 발굴에 힘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는 설명이다. "발굴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요.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남성의 캐릭터도 정형화시키지 않고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말에 관심이 많기로 유명하다. "제 이름 자체가 한글이잖아요. 가명인 줄 아는 독자들도 있던데…. 우리말은 뜻을 잘 모르는 말이더라도 맥락 상에서 그냥 읽혀요. 우리말을 자주 쓰는 건 모국어의 신비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공부를 해서 쓰는 글을 좋아하는 성향도 역사소설을 주로 집필하는 이유가 됐다. "정보를 주는 매체가 늘어나고 있지만 소설이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이 아직까지는 크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이 독자들에게 다른 매체가 줄 수 없는 정보를 얻어간다면 참 기쁠 것 같아요."
앞서 이 소설을 지난 9월부터 인터넷서점 인터파크에 약 3개월간 52회 연재했다. 회당 평균 페이지뷰가 4만여건으로 전체 조회수 230만건을 기록했다. 김씨의 인터넷 연재는 지난해 교보문고 블로그에 소개한 장편소설 '가미가제 독고다이'에 이어 두 번째다.
"동성애가 소재라서 그런지 성인 인증을 하고 봐야 하더라"며 "이렇게 번거로운 부분이 있음에도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줘 감사한다"는 마음이다. "독자들에게 역사적인 상식 등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며 "전통적인 매체가 사라지고 있지만 이런 새로운 공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봤다. "작가는 숨어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트위터, 미니홈피 등을 사용한 적이 없어 낯설기도 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독자들과 소설을 통해 만나는 것도 꽤 즐거운 경험이더라고요. 호호호." 322쪽, 1만3800원,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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