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은 청각장애인이다.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나 스무해 동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살아왔다. 예
쁜 얼굴과 해맑은 눈, 맑은 미소 그리고 경쾌한 움직임, 거기에 키 165㎝ 몸무게 45㎏인 체구를 보며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던 사람은 놀라고 만다. 아니, 그녀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일순간 가슴이 저려온다.
김혜원을 단 10%도 모르기 때문에 드러내게 되는 반응이다. 김혜원을 아는 이는 누구나 김혜원이 다소 불편할 뿐 스스로는 늘 의욕에 넘치고 자신감 있게 세상을 살아오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그런 단단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에서 미와 지 그리고 예를 겸비한 출중한 여성들이 대거 참가한 미스월드코리아에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5일 그녀를 단숨에 주목받게 만든 SBS TV ‘놀라운대회 스타킹’ 출연도 꿈꾸기 힘들었을 터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김혜원은 미스월드코리아 5위 자격으로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당당히 시청자 앞에 섰다.
수화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김혜원은 “우연히 인터넷을 보고 미스월드코리아에 나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입상에 대한 기대보다 참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기뻤죠”라면서 “제가 5위에 호명 되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어요”라고 입상소감을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김혜원은 팝스타 비욘세(30)와 싱크로율 100%라는 평가를 받은 ‘싱글 레이디’ 춤과 화려한 난타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어려서부터 춤추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라면서 “스타킹에 나가기 위해 며칠 전부터 연습했죠”라고 전했다.
“연습했다”고 아주 간단히 말하지만 만만찮은 준비 과정이었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으면 소리는 못 들어도 바닥의 진동은 느낄 수 있어요. 비디오를 켜놓고 동작을 숙지하면서 진동을 느끼며 마음으로 박자를 계산했죠. 녹화할 때는 앞에서 선생님이 시작 시점만 알려주면 이미 박자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어요.”
난타는 3년째 해오고 있다. 특기라고 내세울 수준이다. 김혜원을 청각장애인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놀랄 만하다. 뿐만 아니다. 수영은 물론 암벽등반까지 두루 섭렵한 만능 스포츠우먼이기도 하다.
조심스럽게 사회고발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 얘기를 꺼냈다. 2005년 광주의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난 청각장애인 원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영화를 아직 못 봤다”는 김혜원은 “하지만 내용을 주변에서 이야기로 들은 뒤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학교를 폐교시켜야 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화가 났었죠”라면서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기에 더 많은 위로와 보살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라고 울분을 토했다.
김혜원이 이 영화를 봤다고 해도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결국, 청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은 김혜원처럼 직접 일어서야 하고 현실과 맞싸워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혜원은 “앞으로 1년간 미스월드코리아를 홍보하는데 앞장설 거에요. 그리고 앞으로 저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보태는 좋은 멘토가 되고 싶어요”라고 희망했다.
입상을 계기로 당초 꿈이었던 바리스타 대신 새로운 목표를 정하게 됐다.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맞서는 직업, 바로 모델이다.
“모델은 어릴 적 잠시 꿨던 꿈이었지만 현실에 떠밀려 포기했었어요. 하지만 다시 꿈꿔 보려고 해요. 연기요? 아직은 관심이 없네요. 그래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데 제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동참하겠습니다. 그게 미스월드코리아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소명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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